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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 아이티 꽃동네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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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댓글 0건 조회 34,326회 작성일 18-03-17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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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에 나와 아내는 아이티 꽃동네를 4번 방문했다
첫번째 갔을땐 한국 꽃동네가 아이티에 진출한지 몇달 밖에 안 됐을 때였다.
내가 마취 통증 의사이기 때문에 아픈 환자를 보게 됐는데 많은 사람들 혈압이 200/120을 넘었고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두통을 호소하였다.  Stroke가 오기 전 증상 이었다. 가져간 주사약으로  우선 혈압을 낮추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가 별로 없었다. 그곳에 stroke환자가 몇명 있었는데 해줄수 있는치료가 별로 없었다. 그들은 치료도 받지 못하고 그냥 죽어 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생명 연장만 시키는stroke환자를 많이 봐 온 나로서는 그런 죽음이 좀 더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많은 환자들이 척추강 협소증, 관절염 등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가장 빠르고 그래도 오래 가는 치료를 해주고 와야 하기때문에 거의 모든 환자들에게 주사를 줬다. 허리 아픈 환자들에게 척추 경막 외강 주사를 주려고 허리를 벗겨 보고 놀란건 아무도 팬티를 입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겉옷 하나만 입고 있었다.  그리고 주사를 줄려고 허리를 알코홀로 딲으면 때가 끝도 없이 나왔다. 결국엔 손 소독을 하는 sanitizer로 때 밀듯이 뻑뻑 민 다음에 알코홀로 다시 딲은 다음에 주사를 줬다. 그때 아이티에 좀 제데로 된 치료실을 만들고 미국에서 의사 간호사들이 돌아 가면서 아이티에서 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 갔을땐 8월에 갔었는데 더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낮에 환자를 볼땐 땀이 줄줄 흘러 내려와 장갑을 끼기도 힘들었다. 밤엔 모기 때문에 모기장 속에서 자야 되는데 수녀님이 주신 선풍기도 9시에 전기가 나가고 나면 모기장 속은 찜통속 같았다.  찬물로 몸을 식히느라고 몇번 들락 날락 하고 나면 모기장속에도 모기가 들어 와서 윙윙 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수가 없었다 . 이틀을 잠을 못 자니까 이러다간 내가 죽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 였다. 집으로 돌아 오는 비행기 속에서 아이티에서 계속 사시는 신부님 수사님 수녀님들을 생각 하며 너무 미안 하고 내자식을 오지에 때어 놓고 오는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후 2년간 그 끔찍한 곳을 도저히 다시 갈 생각을 못했다.  그래도 마음은 항상 아이티에 계신 수녀님, 수사님 생각을 하다가 올 4월에 용기를 내서 다시 아이티를 가게 되었다.

3번째 아이티에 가 보니 많은것이 변해 있었다. 남자, 여자 중 환자실이 만들어져서 중환자들을 한 곳에서 치료를 할수 있게 되었고, 남자, 여자 정신병동이 따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 그리고 6명의 아기들을 돌보는 아기방이 있었고 아이들 그리고 다쳐서 오갈데 없는 젊은 환자들이 있었다 . 아기들은 모두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은 정신 박약아 였고 그중 3명은 장님이었다.
그런 환자를 보면서 우리 수녀님 신부님들은 철 안든 어린애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애들을 데려다가 어떻게 하실려는지, 저 애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해야 되는데 그것도 죽을때까지 데리고 있어야 할텐데 저걸 어떻게 하실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젊은 환자들은  오토바이 사고나 낙상 사고로 병원엔 갔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병원 쓰레기 장에 버려져서 거기서 누워서 구걸을 하면서  살던 사람들이 었다.  그중에 한 명은 고관절이 부러졌는데  1년 을 누워서 구걸을 하다가 꽃동네로 왔는데 다리가 한쪽 으로 돌아 가서 굳어져 있어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처음부터 치료만 제데로 받았더라면 인생을 제데로 살수 있는 사람인데 평생을 저렇게 누워서 살다가 죽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이 막혀 오는것 같았다.
통증 환자를 볼때 놀란것은 모두 팬티를 입고 있었고  할머니들은 팬티에 부라자 까지 하고 있었다 . 대부분의 환자들의 혈압도 괜찮았고 주사를 줄때 알코홀로 대충만 닦아도 될 정도로 위생 관리가 잘 돼있었다.
미국에 돌아온후 아이티에 제데로 된 수술방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슬슬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아이들 한테 얘기 하니까 주위에 있는의사들에게 내 생각을 알려 보자고 해서 850명의 의사들 에게 도와 달라고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은 하나도 없었다. 오웅진 신부님이  받으셨다는 새 계약이 생각 났다. 네가 얻어 먹을 수 있는 힘 조차 없는 분들을 내 이름으로  맞아 들이면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모두 책임 져 주신다고 했으니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언젠가는 모든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우선 수술을 할려면 필요한 것 들을 하나 둘 씩 여유가 되는데로 아이티로 보내기 시작했다. 거즈부터 시작해서 소독기, 산소 만드는기계, 산소 마스크, 그리고 간단한 수술을 할수 있는 기구 들도 준비하다가 올해 10월에 아내하고 같이 이이티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아이티로 가기 얼마 전에 우리 성당의 볼리비아 의료 선교팀장이 안부 전화를 걸어 왔다.  내가 아이티에 간다고 하니까 “그래요? 그럼 나도 가요” 하며 선듯 나섰다. 그러더니 카톡이 계속 오면서 누구도 가고 누구도 가고 하면서 모두 6 명이 가고 비행기표 까지 다 샀다고 연락이 왔다.  그 중엔 수술방 간호사, 중환자실 간호사, 발 의사, 외과 의사, 치과 위생사등 내가 꼭 같이 가보고 싶었던 분 들이 다 있었다.  와 어떻게 이런일이! 진짜 하느님이 책임을 져 주신다고 하더니 진짜 책임 져 주시는걸 알게 됐다.  요번에 8  명이 같이 가기 때문에 물건을 많이 가져 갈수 있었다.  삼겹살, 스테이크, 상추, 사과, 깻잎, 그리고 뉴저지 꽃동네 회원님들이 준비 해 주신 김치, 밑 반찬등 50 파운드 가방이 22개 나 돼었다.
아이티에 가서 진료를 하는데 왜 환자들 속 내의에 그렇게 관심이 가는지 나도 잘 모르지만 요번에 보니까 어떤 할머니들은 팬티, 부라자에 속치마까지 셑트로 입고 있었다.
발 의사인  Dr. 한 윤이 본 환자중에 12 살 먹은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다리가 오그라 들어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있었다.  수술을 하면 나중에 커서 제데로 걸을 수 있다고 해서 수술을 하기로 했고, 또 외과 의사인 Dr. June Lee 가 본 환자 중에 60세 된 남자분은 배꼽 탈장이 꼬여서 수술을 해야 만 나을수 있다고 해서 그 분도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을 하기 위해 점검을 해 보니까 기적 같이 모든게 갖추어져 있었다.  외과 의사, 마취과 의사, 수술실 간호사,  회복실을 맡아 줄 중환자실 간호사, 수술 도구, 소독기, 산소, 모니터.  단 한 가지 없는건 마취제 였는데 그런 약은 가져갈 수 가 없었다.
탈장 환자는 척추 마취를 하고 손 전등으로 불을 밝히고 무사히 수술을 마칠수 있었는데, 12 살 짜리 아이는 겁을 먹어서 펄펄 뛰는 바람에 도저히 마취를 할수가 없었다.  그레서 모두 포기를 하고 있는데 수녀님이 무슨 마취제가 필요 하냐고 해서  propofol 이라는 약이 필요 하다고 하니까 저녁도 안 드시고 차를 타고 나가셨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거의 다 끝 마쳤을때 수녀님이 활짝 웃으시며 돌아 오셨다.  미국 같으면 처방전이 있어도 왠만한 약국에도 없는그런 약을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놀랄 뿐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을 먹고 아이를 데려다가 정맥주사를 놓고  propofol 를 주고 척추 경막 외강 마취를 하고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가 있었다.
내가  바랐던 대로 조금만 더 준비하면 미국에서 정규적으로 의사 간호사가 돌아 가면서 가면 아이티에서도 왠만한 수술을 할수 있다는 확신을 받았다.

요번에 아이티에 가서 의과대학 1년 선배를 만났다. 그 분은 뉴욕에서 내과 의사로 개업을 오래 하시다가 다 정리하고 이이티에 가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환자를  130 명을 보고 14개 고아원과 10 여 개의 교회를 돌보고 있었다. 그 분을 만나고 오는 길에 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선배가 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과 꽃동네에서 하는 일이 뭐가 다른가? 우리가 봉사를 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어떤 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며칠 아이티에 와서 환자를 보다가 돌아 가면 다시 내 삶으로 돌아 가고, 선배 의사도 많은 환자들을 보지만 가족이 없고 얻어 먹을수 있는 힘도 없는 사람들은 택시 태워서 다른데로 보내 버리면 되는데,  꽃동네는 그런 오갈데 없는 장님에 정신 박약아 같은애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상처 치료 해주고 죽으면 장례까지 치러주는 내 이웃을 진짜 내 몸 같이 사랑 한다는 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꽃동네가  바라는 세상은 한 사람도 버려 지는사람이 없는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 같이 우러름을 받는 세상,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세상이라는데 그 중에서도 이웃을 그냥 사랑하는게 아니고 내 몸 같이 사랑 한다는게 진짜 어려운것 이라는걸 깨달았다. 내가 하는 이웃 사랑은 내가 여유가 있고 시간이 있을 때 하는 나를 위한 사랑이었고 나의 자만이었다.  그레도 내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꽃동네에서 아주 작은 일이지만 조금 이나마 함께 할수 있고,  이웃 사랑을 배울수 있는 꽃동네 회원이 된게 얼마나 감사 한지 모른다.
빨리 아이티 꽃동네에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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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꽃동네 (Haiti_Kkottongnae)

’꽃동네’는 사랑의 결핍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아무 말 없이 죽어가는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들을 따뜻이 맞아들여 먹여주고 입혀주고 치료해주며,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살다가 돌아가시면 장례해드리는 데까지 보살펴드리는 사랑과 구원의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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