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월 소식지 요셉 신부의 아이티 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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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아니라 보!!!
아이티의 두 번째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이티’로 삼행시를 지어보았다.
‘아’이티에 왔다.
‘이’제 슬슬 집이 그리워진다.
‘티’내지 말아야지.
아이티의 일정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공항에서 벗어나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포장도로이긴 한데, 군데군데 땅에 패여진 정도가 꽤 깊었고, 그리고 비가 왔었는지 패여진 곳에는 물이 고여 그곳에 차가 다니면서 길은 엉망진창이었다. ‘덜컹덜컹’ ‘들썩들썩’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려웠고, 어느새 나의 손은 안전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티는 나의 삶을 마구 흔들어 깨웠다.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사제여, 고요함을 지키는 데 급급해 하지 마라.” 교황님께선 움직이지 않는 사제들이 걱정된다며, ‘기도하고 미사를 집전하되, 예수 그리스도는 ‘길 위의 사람’이었다는 점을 잊지 마라. 그리스도는 항상 사람들 속에 계셨다. ...사제는 사람들 속에 닳아 없어져야 하는 존재’ 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껏 사람들과 간격을 두면서 내가 지키고자 했던 건 무엇인가? 손에 꼭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했던 건 무엇인가?’
아이티는 안전하다고 여겼던 그 손잡이를 놓으라고 연신 나를 괴롭혔다. 그래야 저들과 만날 수 있고 함께 있을 수 있다고...
복음의 현장 속에서 만난 가난하고 병든 이들 -온몸에 악취를 풍기는 이들, 정신병을 앓는 이들, 몸에 욕창이 있거나 살이 썩어 문드러진 이들- 이들 하나하나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커다란 도전이었고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한 주 앞두고 간 터라, 저들의 모습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혼자 중얼거리는 예수님,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히면 벗으시고, 다시 입히면 또 벗으시는 예수님,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시는 예수님, 웃기지도 않은데 계속 웃으시는 예수님, 거짓말하며 몰래 물건을 훔쳐 가시는 예수님.
‘다들 고분고분하고 말을 잘 따라주면 좋겠는데, 예수님, 당신께 뭔가를 해드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쓰레기 마을에 가서 쌀과 옷을 나눠주면서도, 꽃동네 자체에서 후원받은 물품으로 장터를 열어 사람들이 구입한 것을 일일이 확인하며 내보내면서도, 사랑의 봉사자가 아닌 어느 순간 감시자로 변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물품을 몰래 가져가거나 속이는 사람이 없는지 매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잡는 것이 미안했지만, 나중에는 잡는 것에 재미가 들리기도 했다.(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한 할머니의 경우, 나에게 적발이 돼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다음날, 할머니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새 정이 들어버렸는지 심술궂게 보이던 할머니가 사랑스럽게 보였다. 내 입가에선 웃음이 흘러나왔고, 할머니도 나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만나면서 한 번 더 웃어줄 걸... 한 번 더 반갑게 인사할 걸... 한 번 더 포옹이라도 할 걸... 일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빨리 일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봉사하면서까지 그렇게 나의 손은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었나 보다.
손을 펴야만 저들을 만질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제는 손을 펴서 저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아’직도 지진의 상흔을 안고 가난에 허덕이며 사는 아이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굽어 살피소서.
‘티’없이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이티의 두 번째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이티’로 삼행시를 지어보았다.
‘아’이티에 왔다.
‘이’제 슬슬 집이 그리워진다.
‘티’내지 말아야지.
아이티의 일정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공항에서 벗어나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포장도로이긴 한데, 군데군데 땅에 패여진 정도가 꽤 깊었고, 그리고 비가 왔었는지 패여진 곳에는 물이 고여 그곳에 차가 다니면서 길은 엉망진창이었다. ‘덜컹덜컹’ ‘들썩들썩’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려웠고, 어느새 나의 손은 안전 손잡이를 꽉 쥐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티는 나의 삶을 마구 흔들어 깨웠다.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사제여, 고요함을 지키는 데 급급해 하지 마라.” 교황님께선 움직이지 않는 사제들이 걱정된다며, ‘기도하고 미사를 집전하되, 예수 그리스도는 ‘길 위의 사람’이었다는 점을 잊지 마라. 그리스도는 항상 사람들 속에 계셨다. ...사제는 사람들 속에 닳아 없어져야 하는 존재’ 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껏 사람들과 간격을 두면서 내가 지키고자 했던 건 무엇인가? 손에 꼭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했던 건 무엇인가?’
아이티는 안전하다고 여겼던 그 손잡이를 놓으라고 연신 나를 괴롭혔다. 그래야 저들과 만날 수 있고 함께 있을 수 있다고...
복음의 현장 속에서 만난 가난하고 병든 이들 -온몸에 악취를 풍기는 이들, 정신병을 앓는 이들, 몸에 욕창이 있거나 살이 썩어 문드러진 이들- 이들 하나하나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내겐 커다란 도전이었고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한 주 앞두고 간 터라, 저들의 모습이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혼자 중얼거리는 예수님,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히면 벗으시고, 다시 입히면 또 벗으시는 예수님,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시는 예수님, 웃기지도 않은데 계속 웃으시는 예수님, 거짓말하며 몰래 물건을 훔쳐 가시는 예수님.
‘다들 고분고분하고 말을 잘 따라주면 좋겠는데, 예수님, 당신께 뭔가를 해드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쓰레기 마을에 가서 쌀과 옷을 나눠주면서도, 꽃동네 자체에서 후원받은 물품으로 장터를 열어 사람들이 구입한 것을 일일이 확인하며 내보내면서도, 사랑의 봉사자가 아닌 어느 순간 감시자로 변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물품을 몰래 가져가거나 속이는 사람이 없는지 매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잡는 것이 미안했지만, 나중에는 잡는 것에 재미가 들리기도 했다.(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한 할머니의 경우, 나에게 적발이 돼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나에게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다음날, 할머니와 다시 마주쳤을 때, 그새 정이 들어버렸는지 심술궂게 보이던 할머니가 사랑스럽게 보였다. 내 입가에선 웃음이 흘러나왔고, 할머니도 나와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만나면서 한 번 더 웃어줄 걸... 한 번 더 반갑게 인사할 걸... 한 번 더 포옹이라도 할 걸... 일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빨리 일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다. 봉사하면서까지 그렇게 나의 손은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었나 보다.
손을 펴야만 저들을 만질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제는 손을 펴서 저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아’직도 지진의 상흔을 안고 가난에 허덕이며 사는 아이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굽어 살피소서.
‘티’없이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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