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 아이티 꽃동네 소식지 이 한식 선생님 글 > 꽃동네 뉴스 게시판 (News)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꽃동네 뉴스 게시판 (News)

2017.12 아이티 꽃동네 소식지 이 한식 선생님 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마지아
댓글 0건 조회 30,777회 작성일 18-02-18 02:25

본문

지난 4년 동안에 나와 아내는 아이티 꽃동네를 4번 방문했다
첫번째 갔을땐 한국 꽃동네가 아이티에 진출한지 몇달 밖에 안 됐을 때였다.
내가 마취 통증 의사이기 때문에 아픈 환자를 보게 됐는데 많은 사람들 혈압이 200/120을 넘었고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두통을 호소하였다.  Stroke가 오기 전 증상 이었다. 가져간 주사약으로  우선 혈압을 낮추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가 별로 없었다. 그곳에 stroke환자가 몇명 있었는데 해줄수 있는치료가 별로 없었다. 그들은 치료도 받지 못하고 그냥 죽어 가고 있었다.  미국에서 생명 연장만 시키는stroke환자를 많이 봐 온 나로서는 그런 죽음이 좀 더 자연스러운 죽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많은 환자들이 척추강 협소증, 관절염 등으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었다. 가장 빠르고 그래도 오래 가는 치료를 해주고 와야 하기때문에 거의 모든 환자들에게 주사를 줬다. 허리 아픈 환자들에게 척추 경막 외강 주사를 주려고 허리를 벗겨 보고 놀란건 아무도 팬티를 입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겉옷 하나만 입고 있었다.  그리고 주사를 줄려고 허리를 알코홀로 딲으면 때가 끝도 없이 나왔다. 결국엔 손 소독을 하는 sanitizer로 때 밀듯이 뻑뻑 민 다음에 알코홀로 다시 딲은 다음에 주사를 줬다. 그때 아이티에 좀 제데로 된 치료실을 만들고 미국에서 의사 간호사들이 돌아 가면서 아이티에서 봉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 갔을땐 8월에 갔었는데 더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낮에 환자를 볼땐 땀이 줄줄 흘러 내려와 장갑을 끼기도 힘들었다. 밤엔 모기 때문에 모기장 속에서 자야 되는데 수녀님이 주신 선풍기도 9시에 전기가 나가고 나면 모기장 속은 찜통속 같았다.  찬물로 몸을 식히느라고 몇번 들락 날락 하고 나면 모기장속에도 모기가 들어 와서 윙윙 거리는 소리에 잠을 잘수가 없었다 . 이틀을 잠을 못 자니까 이러다간 내가 죽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 였다. 집으로 돌아 오는 비행기 속에서 아이티에서 계속 사시는 신부님 수사님 수녀님들을 생각 하며 너무 미안 하고 내자식을 오지에 때어 놓고 오는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후 2년간 그 끔찍한 곳을 도저히 다시 갈 생각을 못했다.  그래도 마음은 항상 아이티에 계신 수녀님, 수사님 생각을 하다가 올 4월에 용기를 내서 다시 아이티를 가게 되었다.

3번째 아이티에 가 보니 많은것이 변해 있었다. 남자, 여자 중 환자실이 만들어져서 중환자들을 한 곳에서 치료를 할수 있게 되었고, 남자, 여자 정신병동이 따로 잘 만들어져 있었다 . 그리고 6명의 아기들을 돌보는 아기방이 있었고 아이들 그리고 다쳐서 오갈데 없는 젊은 환자들이 있었다 . 아기들은 모두 부모에게서 버림을 받은 정신 박약아 였고 그중 3명은 장님이었다.
그런 환자를 보면서 우리 수녀님 신부님들은 철 안든 어린애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애들을 데려다가 어떻게 하실려는지, 저 애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고 해야 되는데 그것도 죽을때까지 데리고 있어야 할텐데 저걸 어떻게 하실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젊은 환자들은  오토바이 사고나 낙상 사고로 병원엔 갔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병원 쓰레기 장에 버려져서 거기서 누워서 구걸을 하면서  살던 사람들이 었다.  그중에 한 명은 고관절이 부러졌는데  1년 을 누워서 구걸을 하다가 꽃동네로 왔는데 다리가 한쪽 으로 돌아 가서 굳어져 있어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처음부터 치료만 제데로 받았더라면 인생을 제데로 살수 있는 사람인데 평생을 저렇게 누워서 살다가 죽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 내 가슴이 막혀 오는것 같았다.
통증 환자를 볼때 놀란것은 모두 팬티를 입고 있었고  할머니들은 팬티에 부라자 까지 하고 있었다 . 대부분의 환자들의 혈압도 괜찮았고 주사를 줄때 알코홀로 대충만 닦아도 될 정도로 위생 관리가 잘 돼있었다.
미국에 돌아온후 아이티에 제데로 된 수술방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슬슬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을 아이들 한테 얘기 하니까 주위에 있는의사들에게 내 생각을 알려 보자고 해서 850명의 의사들 에게 도와 달라고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은 하나도 없었다. 오웅진 신부님이  받으셨다는 새 계약이 생각 났다. 네가 얻어 먹을 수 있는 힘 조차 없는 분들을 내 이름으로  맞아 들이면 그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모두 책임 져 주신다고 했으니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언젠가는 모든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우선 수술을 할려면 필요한 것 들을 하나 둘 씩 여유가 되는데로 아이티로 보내기 시작했다. 거즈부터 시작해서 소독기, 산소 만드는기계, 산소 마스크, 그리고 간단한 수술을 할수 있는 기구 들도 준비하다가 올해 10월에 아내하고 같이 이이티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아이티로 가기 얼마 전에 우리 성당의 볼리비아 의료 선교팀장이 안부 전화를 걸어 왔다.  내가 아이티에 간다고 하니까 “그래요? 그럼 나도 가요” 하며 선듯 나섰다. 그러더니 카톡이 계속 오면서 누구도 가고 누구도 가고 하면서 모두 6 명이 가고 비행기표 까지 다 샀다고 연락이 왔다.  그 중엔 수술방 간호사, 중환자실 간호사, 발 의사, 외과 의사, 치과 위생사등 내가 꼭 같이 가보고 싶었던 분 들이 다 있었다.  와 어떻게 이런일이! 진짜 하느님이 책임을 져 주신다고 하더니 진짜 책임 져 주시는걸 알게 됐다.  요번에 8  명이 같이 가기 때문에 물건을 많이 가져 갈수 있었다.  삼겹살, 스테이크, 상추, 사과, 깻잎, 그리고 뉴저지 꽃동네 회원님들이 준비 해 주신 김치, 밑 반찬등 50 파운드 가방이 22개 나 돼었다.
아이티에 가서 진료를 하는데 왜 환자들 속 내의에 그렇게 관심이 가는지 나도 잘 모르지만 요번에 보니까 어떤 할머니들은 팬티, 부라자에 속치마까지 셑트로 입고 있었다.
발 의사인  Dr. 한 윤이 본 환자중에 12 살 먹은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다리가 오그라 들어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있었다.  수술을 하면 나중에 커서 제데로 걸을 수 있다고 해서 수술을 하기로 했고, 또 외과 의사인 Dr. June Lee 가 본 환자 중에 60세 된 남자분은 배꼽 탈장이 꼬여서 수술을 해야 만 나을수 있다고 해서 그 분도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을 하기 위해 점검을 해 보니까 기적 같이 모든게 갖추어져 있었다.  외과 의사, 마취과 의사, 수술실 간호사,  회복실을 맡아 줄 중환자실 간호사, 수술 도구, 소독기, 산소, 모니터.  단 한 가지 없는건 마취제 였는데 그런 약은 가져갈 수 가 없었다.
탈장 환자는 척추 마취를 하고 손 전등으로 불을 밝히고 무사히 수술을 마칠수 있었는데, 12 살 짜리 아이는 겁을 먹어서 펄펄 뛰는 바람에 도저히 마취를 할수가 없었다.  그레서 모두 포기를 하고 있는데 수녀님이 무슨 마취제가 필요 하냐고 해서  propofol 이라는 약이 필요 하다고 하니까 저녁도 안 드시고 차를 타고 나가셨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거의 다 끝 마쳤을때 수녀님이 활짝 웃으시며 돌아 오셨다.  미국 같으면 처방전이 있어도 왠만한 약국에도 없는그런 약을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놀랄 뿐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을 먹고 아이를 데려다가 정맥주사를 놓고  propofol 를 주고 척추 경막 외강 마취를 하고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가 있었다.
내가  바랐던 대로 조금만 더 준비하면 미국에서 정규적으로 의사 간호사가 돌아 가면서 가면 아이티에서도 왠만한 수술을 할수 있다는 확신을 받았다.

요번에 아이티에 가서 의과대학 1년 선배를 만났다. 그 분은 뉴욕에서 내과 의사로 개업을 오래 하시다가 다 정리하고 이이티에 가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환자를  130 명을 보고 14개 고아원과 10 여 개의 교회를 돌보고 있었다. 그 분을 만나고 오는 길에 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선배가 하는 일과, 내가 하는 일과 꽃동네에서 하는 일이 뭐가 다른가? 우리가 봉사를 한다고 해도 거기에는 어떤 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며칠 아이티에 와서 환자를 보다가 돌아 가면 다시 내 삶으로 돌아 가고, 선배 의사도 많은 환자들을 보지만 가족이 없고 얻어 먹을수 있는 힘도 없는 사람들은 택시 태워서 다른데로 보내 버리면 되는데,  꽃동네는 그런 오갈데 없는 장님에 정신 박약아 같은애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데려다 먹이고 입히고 상처 치료 해주고 죽으면 장례까지 치러주는 내 이웃을 진짜 내 몸 같이 사랑 한다는 게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꽃동네가  바라는 세상은 한 사람도 버려 지는사람이 없는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 같이 우러름을 받는 세상,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세상이라는데 그 중에서도 이웃을 그냥 사랑하는게 아니고 내 몸 같이 사랑 한다는게 진짜 어려운것 이라는걸 깨달았다. 내가 하는 이웃 사랑은 내가 여유가 있고 시간이 있을 때 하는 나를 위한 사랑이었고 나의 자만이었다.  그레도 내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는 꽃동네에서 아주 작은 일이지만 조금 이나마 함께 할수 있고,  이웃 사랑을 배울수 있는 꽃동네 회원이 된게 얼마나 감사 한지 모른다.
빨리 아이티 꽃동네에 다시 가고 싶다.

- Lee Han Sik Michael
For the past 4 years, my wife and I have visited Kkottongnae Haiti 4 times. The first visit was made when Kkottongnae Haiti was recently established. As an anaesthetist, I looked after the sick in the village and met with a lot of patients suffering from headaches whose blood pressure rose up to 200/120. They demonstrated symptoms which would lead to stroke. I was able to take preventive measures to reduce their blood pressure with the medications I had, but it was temporary. There were also patients who were suffering from stroke but there was not much I could do to help them. Most of them were dying because of lack of treatments. In the United States, the lives of most of stroke patients are prolonged with drugs without complete cure, so I even thought that the deaths of Haitians took a more natural course of life.
I also saw several cases of spinal stenosis and arthritis. To relieve the pain, injection was given to all the patients because it was the treatment that works fast and lasts long. What struck me as a surprise every time I asked the patients to take off their bottom to administer the injection was that none of them were wearing under garments. They were all wearing just one layer of clothes. The hygienic state of the skin was also shocking because I had to sanitize the surface of their skin multiple times and then apply the alcohol to be able to give injections. That is when I realized the real need for the Kkottongnae community to have proper medical equipment and medical staffs. 
My second visit to Haiti was in August. During the day, all the sweating from the intense heat was preventing me to put on my gloves properly when meeting with patients. During the night, sleeping in the mosquito net felt like a sauna as the fan would stop working when electricity gets cut at 9PM. I had to take cold showers to cool down and when I returned to bed, the sounds of mosquitoes kept me up all night. Two days without sleep left me very weak. On my flight back to the United States, the emotion of compassion and sadness filled my heart as I pictured the faces of the religious members and felt as if I was a parent leaving them in a foreign country all by themselves. 
For 2 years, I did not dare to go back. Spiritually, my heart was always thinking about Kkottongnae Haiti. So that is when I mustered up my courage to visit for the third time in April, 2017.
To my pleasant surprise, a lot has changed in Kkottongnae. There were intensive care units built for male and female as well as specialized units for patients suffering from dementia. Children’s room was made to house 6 abandoned children with disability, 3 of whom were blind. As I looked at these children, I thought of how naive and irrational the religious members had to be to carry out such mission to house them. How could they make a decision to bring in these handicapped children they have to care for the rest of their lives? How will they manage to feed and educate them until their death?
The other young patients got injured from collisions on their motorbikes or from a fall. They went to the hospital but were banned from receiving treatments because they couldn’t pay for their medical bills. These untreated patients were left stranded on the streets of the hospital. One man lived on the streets for a year before finding his way to Kkottongnae. He suffered from untreated hip fractures that deformed his legs inwards which prevented him from sitting or standing properly. It pained me to know that he could have lived a normal and healthy life, had he been treated immediately.
It also surprised me to see that everyone was wearing under garments. The blood pressure of most patients was at an acceptable range, and hygienic state of the elderly has improved significantly when administering injections.

Upon my return from Haiti, I got an idea to build an operation room in Kkottongnae Haiti. I shared this idea to 850 doctors to ask for their support, but no one has responded back. At this moment of despair, I got consolation from the revelation that Fr. Woong-Jin Oh had received during his prayer: “If you help those who do not even have the strength to eat and welcome them in my name, I will take care of the rest.” If it is His will, I knew He will take care of the rest.
Gradually, I started to gather necessary medical equipment to stock an operation room, such as gauzes, disinfectant equipment, oxygen masks, and basic tools. In October of this year, my wife and I decided to go back to Haiti.
Just before leaving for Haiti, I reconnected with a fellow missionary in Bolivia. When I shared my plans in Haiti, he volunteered to join me on this journey. Shortly afterwards, he has organized a group of 6 people who were accompanying him which comprised of assistant nurse in operation room, nurse in intensive care unit, orthopedist, surgeon, and a dentist. It was the formation of a dream team that I have been praying for. What a miracle! God was truly taking care of the rest! As we were a group of 8, we were able to carry 22 luggage of 50lbs, bringing medical supplies and donated items and food from Kkottongnae New Jersey.
During the examination period, my mind was focused on the under garments of the patients. Despite not knowing the source of this fixation, I was pleasantly surprised to find that the residents were wearing them in a complete set.
Dr. Han Yoon, an orthopedist, examined a 12-year-old girl who had deformity in her legs which prevented her from standing and walking. Surgery was confirmed because there was potential that she could walk freely after a successful operation. Another surgery was confirmed under the direction of Dr. June Lee who examined the 60-year-old patient with umbilical hernia.
Miraculously, all the necessary equipment was ready in the operation room: a surgeon, anesthetist, assistant nurse in operation room, nurse in intensive care unit to take care of post-operation, tools for surgery, disinfectants, oxygenation tools, and a heart monitor. The only thing that was missing was anaesthesia because it couldn’t be crossed over the borders.
The patient with umbilical hernia went through the successful operation with spinal anesthesia under the light emitting from a flashlight. However, the 12-year-old girl was too scared to get the injection so we even considered abandoning the operation altogether. At that moment, a nun in Kkottongnae Haiti solved the problem by going out and getting a bottle of propofol, which is a controlled substance that is difficult to obtain in the U.S. even with a prescription.           
The next morning, we have used the propofol to make her fall asleep, then finally anaesthetized her to successfully complete the operation. As I had hoped, I gained confidence through this experience that we are able to carry out successful operations if few medical staffs rotate turns to visit Haiti.
During the visit, I also met with an alumnus of my medical school. He has worked as a doctor in internal medicine in New York for a long time before retiring and moving to Haiti. He examines 130 patients every day. He oversees 14 orphanages and dozens of churches. It made me think,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the work carried out by me, him, and the Kkottongnae community?”
I realized that there are limitations to what we can achieve through volunteerism. I only visit Haiti for a few days to examine patients before returning to my daily routine at home. My colleague examines a lot of patients but he cannot provide everything that they need. Kkottongnae, however, brings those people into their home and welcome the blind, mentally-ill, disabled and handicapped children, and the homeless to give them food, clothes, medical assistance, and even provide funeral ceremony when they pass away. I was witnessing the true act of loving the neighbour as we love ourselves. 
A world that Kkottongnae dreams is: A world that there is no one abandoned; a world that there is no one abandoned; a world where all people are respected as an image of God; a world where we love one another as we love ourselves.
I learned that it is very difficult to truly love another as we love ourselves. My act of love is carried out during my convenient hours, for myself, to serve my own pride. Regardless of the small scale of my action, I thank God for teaching me how to love and I hope to keep learning as a supporting member of the Kkottongnae community.
I cannot wait for my next visit to Haiti.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아이티 꽃동네 (Haiti_Kkottongnae)

’꽃동네’는 사랑의 결핍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아무 말 없이 죽어가는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들을 따뜻이 맞아들여 먹여주고 입혀주고 치료해주며,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살다가 돌아가시면 장례해드리는 데까지 보살펴드리는 사랑과 구원의 공동체입니다.

  • 509-3442-9220
  • Rte Nationale #3, Beudet-Meyer, Croix des Bouquets, Haiti
Copyright © haitikkot.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