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아이티 꽃동네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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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꽃동네 1월 소식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헉 헉 ~~
한 수사님이 들것에 몸이 아픈 아이티 자매를 싣고 산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들것은 가벼워도 그 안에 사람을 눕힌 다음 거친 돌산을 내려오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수사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그냥 모르는 사람인데…. 우리들이 모시고 있는 집없는 걸인도 아니고 노인도 아닌데…다른 사람들이 반겨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그리고 이 사람이 병원에 간다고 치료를 잘 받을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한 달 전쯤이었습니다. 미국의 데마레스트 본당 청년들이 신부님과 함께 아이티 꽃동네에 봉사를 왔습니다. 아이티 꽃동네에서 어르신들과 지내면서 목욕과 식사 청소 그리고 페인트칠 등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냈지요. 갈 곳 없는 어르신들도 그들 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중 하루 우리는 아이티 산 정상에 있는 가난한 마을에 방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특별히 봉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꽃동네 수도자들은 그들에게 꽃동네 뿐 아니라 아이티의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마을의 가난한 어린이들….. 하지만 얼굴은 밝은 이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지요.
한 집에 들어갔습니다. 배에 복수가 가득찬 젊은 자매가 맨 바닦에 누워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8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병든 엄마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울며 앉아 있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막내는 병든 엄마의 젖을 먹고 병에 걸렸는지 잘 울지도 못하고 뼈와 가죽만 남아 있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아서 심장이 커지고 배에 물이 차서 한 차례 병원에 갔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고 지금은 걷지도 못해 산을 내려갈 수도 없고 또한 병원에까지 갈 차비도 없어 남편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은 마음이 아팠지만 단지 함께 기도 해주고 아픈 마음을 뒤로 한 채 산을 내려 왔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도 우리 수사님의 마음에는 그 자매가 계속 남아 있었나 봅니다.
수사님은 크게 결심을 하고 들것을 들고 산을 오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자매를 싣고 그 험한 돌산을 내려와 병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후 우리 꽃동네에 모셨습니다. 꽃동네에서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으며 복수가 줄고 상태가 호전되어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수사님에게 얼마나 고마워 하던지요…하느님이 보내셨다고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 부인은 죽었을 것이라고…..
마을에서 떠나는 날 수사님이 그 자매를 산위의 집까지 모셔다 드렸지요. 수사님은 한 때 그 자매가 실려서 내려왔던 길을 그 자매가 걸어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내려올 때 많은 갈등을 가졌던 수사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라는 마음이 들지요 하지만
사랑은 그래도 부족합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헉 헉 ~~
한 수사님이 들것에 몸이 아픈 아이티 자매를 싣고 산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많이 힘들어 보였습니다. 들것은 가벼워도 그 안에 사람을 눕힌 다음 거친 돌산을 내려오는 것이 겉으로 보기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수사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그냥 모르는 사람인데…. 우리들이 모시고 있는 집없는 걸인도 아니고 노인도 아닌데…다른 사람들이 반겨주지 않을 수도 있는데….그리고 이 사람이 병원에 간다고 치료를 잘 받을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한 달 전쯤이었습니다. 미국의 데마레스트 본당 청년들이 신부님과 함께 아이티 꽃동네에 봉사를 왔습니다. 아이티 꽃동네에서 어르신들과 지내면서 목욕과 식사 청소 그리고 페인트칠 등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냈지요. 갈 곳 없는 어르신들도 그들 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중 하루 우리는 아이티 산 정상에 있는 가난한 마을에 방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특별히 봉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꽃동네 수도자들은 그들에게 꽃동네 뿐 아니라 아이티의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마을의 가난한 어린이들….. 하지만 얼굴은 밝은 이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지요.
한 집에 들어갔습니다. 배에 복수가 가득찬 젊은 자매가 맨 바닦에 누워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8명이나 되는 아이들은 병든 엄마 옆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울며 앉아 있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막내는 병든 엄마의 젖을 먹고 병에 걸렸는지 잘 울지도 못하고 뼈와 가죽만 남아 있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아서 심장이 커지고 배에 물이 차서 한 차례 병원에 갔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고 지금은 걷지도 못해 산을 내려갈 수도 없고 또한 병원에까지 갈 차비도 없어 남편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은 마음이 아팠지만 단지 함께 기도 해주고 아픈 마음을 뒤로 한 채 산을 내려 왔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에도 우리 수사님의 마음에는 그 자매가 계속 남아 있었나 봅니다.
수사님은 크게 결심을 하고 들것을 들고 산을 오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자매를 싣고 그 험한 돌산을 내려와 병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은 후 우리 꽃동네에 모셨습니다. 꽃동네에서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으며 복수가 줄고 상태가 호전되어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수사님에게 얼마나 고마워 하던지요…하느님이 보내셨다고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 부인은 죽었을 것이라고…..
마을에서 떠나는 날 수사님이 그 자매를 산위의 집까지 모셔다 드렸지요. 수사님은 한 때 그 자매가 실려서 내려왔던 길을 그 자매가 걸어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내려올 때 많은 갈등을 가졌던 수사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라는 마음이 들지요 하지만
사랑은 그래도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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