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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꽃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10/16/2017~10/20/2017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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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지아
댓글 0건 조회 21,423회 작성일 17-11-05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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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2017, 마지막 날 _ 안녕.   마지막 밤을 보내는 어두운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발전기는 꺼졌고, 밤새 초를 밝힐 수 없어 어둠속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사방은 칠흙같이 어두워, 벽과 바닥 등을 분간할 수 없었고, 눈을 감으나 뜨나 별 차이가 없었다. 일어났던 일들과 만났던 사람들이 머릿속을 오가며 자리를 차지했다. 오늘 있었던 원장수녀님과의 외출에서 겪은 일들은, 마치 씹지도 않고 통째로 삼켜버려 소화되지 못하고 위장에 그대로 남아 있는 음식 같았다. 뒤척거리고 있을때 시몬수녀님이 나를 부르는 청명한 소리가 창문을 타고 넘어 왔다. “자매님, 내일 아침에 시장가는 사람들하고 6시에 나가실 거예요. 짐을 미리 싸 놓으셔야 할거예요.” 수녀님의 돌아가는 발자국에 풀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어제 만난 할머니를 떠올렸다. 재래시장을 보고 싶어하는 나를 마지막까지 배려해주시는 수녀님의 고운 마음이 고마웠다. 일어나서 짐을 쌀까 하다가 그대로 누워 있기로 했다. 어젯밤에는 바람 소리가 사납더니 오늘은 바람도 잠잠했다. 잠이 오질 않았다. 밤이 깊어가도 잠은 오지 않았다. 몇번씩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다가 새벽 4시에 침대를 나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빨아 널은 옷은 채 마르지 않아 그대로 두고, 운동화를 비닐봉지에 넣고 마른 옷과 양말만 배낭에 넣어 뒀다. 배낭에 자리가 넉넉한데 더 넣어줄 것이 없었다. 목에 걸고 있던 십자가를 목줄로 돌돌 감아 바지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테이블을 정리하고, 침대와 베개 시트를 벗겨 놓고 아직 어두운 밖으로 나갔다. 미사에 가기 전에 잠시 쌍떼에 들러 환자들을 돌아보고 싶었다. 어두운 병실에 들어가니, 환자분들이 옆으로 웅크리고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많은 시간을 아픈 사람들과 보내지만, ‘아프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사람을 참 작게 만드는 것 같다. ‘안녕히 계세요’, 하고 싶은 인사는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고 마음안에만 머물렀다. 쌍떼를 나와, 꽃동네에서 마지막 미사를 드리기 위해 앉았다. 할머니들은 대게 같은 자리에 앉는지, 이제는 뒷모습들이 익숙해 보였다. 미사를 마치고, 더러는 나를 안아 주거나, 알아 듣지는 못하지만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말들을 나에게 남겨 주고 떠나갔다. 수도자들과 사진을 찍고,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짐을 차에 실었다. 조수석에 앉았다가 이내 급하게 내려 주머니에서 새벽에 감아놓은 십자가를 꺼냈다. “신부님, 오늘 할머니 픽업하시면 전해 주실래요?”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시장을 가는 길은 수많은 차량들로 꽉 막혀 있었다. 운전사 앤더슨은 잽싸게 역주행으로 차들을 앞질러 끼어들기도 하며 우리를 시장에 데려다 주었다. Port-Au-Prince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바닥 한켠에 저마다 자리를 편 상인들은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었고, 색색의 야채와 곡식, 과일, 건어물 들이 쌓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음식을 하는 큰 솥에서 연기가 피어 올랐고, 일 없이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젊은 사람들도 많았다. 시몬 수녀님은 구매해야 할 리스트를 손에 쥐고, 요리조리 상인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찾았다. 외국인이라고 무턱대고 비싼 가격을 부를때는 흥정의 여지도 없이 바로 돌아섰고, 마음씨 좋고 솔직한 상인에게는 제값을 쳐주고 덤으로 두어개 더 받아내는 똑소리나는 살림꾼 모습 이였다. 수녀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고, 구정물을 건너뛰고, 잽싸게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흥정하는  수녀님은 일주일간 250명 꽃동네 식구들의 식사를 만들 신선한 재료를 구매했다. 음산한 분위기의 시장에는 거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쉴새없이 터져나왔다. 시몬 수녀님은 이곳이 위험하고, 가끔 살인사건이 나기도 해서 현지 직원들도 오기를 꺼려하는 곳이라고 말해주셨다. 잠시 수녀님과 떨어져 차에 다녀 올 동안에는 갑자기 팔을 낚아채는 남자, 기분 나쁜 휘파람을 불며 뒤에서 따라오는 남자, ‘섹시걸' 이라고 외치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남자들을 지나가야 했다. 맙소사, 그 짧은 새에 이런 일들을 겪다니, 만약 나 혼자 이렇게 벙어리처럼 시장을 돌아다니다가는 두어 시간안에 어딘가 잡혀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동네 현지 남자 직원이 수녀님 곁에 바짝 붙어 따라다니며 짐을 차로 옮겨 주었다. 크레올어에 능숙하고, 현지 사정을 잘 아시는 베테랑 수녀님이지만, 늘 하느님의 보호가 함께 하시길 기도했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시몬수녀님이 떠난 후 나는 혼자가 되었다. 비로소 이곳을 떠난다는 것이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집에가는 즐거움보다, 이곳을 떠나는 슬픔이 아직은 더 컸다. 나는 모든것을 적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느꼈다. 내가 보고, 듣고, 겪은 모든 일들을 적고 싶었다. 보성이에게 빌려온 크롬북을 꺼내 생각나는대로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고, 보딩 직전까지 써 갔다. 비행기에 있는 네시간 동안 이착륙 때를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적었다. JFK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Penn 기차역으로 가는 E train에서 글을 쓰다가 목적지를 지나쳐 월드 트레이드 센터까지 내려가는 바람에 역방향 전철로 다시 올라와야 했다. Penn기차역에서, 뉴저지행 기차 안에서 계속 적어갔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머릿속의 사진이 희미해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모든걸 적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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