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병원에 버려지는 아기 천사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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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꽃동네에는 약 스물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모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다. 신체 장애, 지적 장애, 복합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한 식구가 되어 살아 가고 있다. 적게는 한살이 갓 넘은 아기부터 십대 아이들까지 연령이 다양하다.
보플랑은 항문이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버려졌고, 꽃동네의 돌봄으로 장루 수술을 받았다. 현재는 항문을 만들기 위한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케피는 고아원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혼자 앉아 있던 여자 아이이다. 작년 방문 때, 요한 수사님은 처음 케피를 봤을때 절망과 슬픔이 눈에 가득했다고 하셨다. 세상에 대한 희망도, 삶에 대한 의지도, 사랑에 대한 갈망도 식어 버린 장애 아이가 혼자 구석에 앉아 버려지고 잊혀진채 조용히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작년에 케피를 처음 봤을때, 아이는 워커를 밀며 기우뚱하게 간신히 걸었고 워커가 없을때는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다녔다. 일년이 지난 케피는 좌우로 중심이 흔들리기는 하지만 자신의 두 발로 세상을 걷고 학교를 가고 있었다. 부쩍 자란 아이는 이제 곧 사춘기가 시작될것 같았고, 개구쟁이 탱크보이 같은 레스땡을 친누나처럼 챙기고 있었다.
티가는 국립병원 쓰레기장에 버려진 아이였다. 지금은 꽃동네의 큰형이지만, 처음 꽃동네에 왔을때 할머니들의 뺨을 때리던 아이였다고 했다. 병원에 버려진 동안 에이즈에 걸려 약을 먹고 있는 아픈 아이이지만, 아침이면 멋지게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 다 키운 아들처럼 마음이 흐뭇해 졌다. 신나는 북소리에 정신줄을 놓고 미친듯이 뛰어다닐 때는 대낮의 얌전한 티가는 온데 간데 없이 딴 사람이 되기도 한다.
레스땡(사진)은 다리가 양옆으로 활처럼 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작년에 봤을때 아이는 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허벅지까지 올라온 석고 붕대를 감고 있었다. 딱딱한 석고에 갇힌 다리로 여기저기 바닥을 기어 다녔었다. 다시 만난 레스땡은 두 발로 걷고 있었다. 한 쪽 발이 안쪽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신발을 신고, 걷고, 뛰어 다녔다. 온 세상이 호기심 천지인 세살배기 개구쟁이 골목대장. 야고보 수녀님은 매일 아침 레스땡의 도시락을 챙기신다. “내 자식 기 죽으면 안된다.” 하시며 매일 만들어 주시는 맛있는 샌드위치와 쥬스가 든 도시락 가방은 레스땡의 보물이다. 요한 수사님은 매일 아침 7:15에 레스땡의 손을 잡고 길건너 학교에 데려 가신다. 어느 아침에는 레스땡 등교길에 따라갔는데, 안들어 간다며 대문을 잡고 늘어지는 아이를 선생님이 떼어 안고 들어 가셨다. 또 어느날은 동네 한바퀴 돌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성모 동산에 데려갔는데, 이 녀석이 느닷없이 바지를 내리고 성모님 앞에서 쉬를 하려기에 불이나케 안고 큰 나무 밑으로 달려가야 했다. 이 녀석 오른쪽 손을 턱하니 나무에 받치고 멋지게 볼일을 보더니, 바지도 다 올리기 전에 달아나버려 그 뒤를 쫓아가야했다. 쫓아오는 내 모습이 우습던지 뒤돌아 보며 깔깔대고 웃고 난리였다. 요한 수사님의 한국어 과외열 덕분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레스땡 입니다.”하는 한글말 자기소개도 곧잘 따라한다. 수사님이 “돼지!” 하면 레스땡은 “꿀꿀!”, “병아리!”, “삐악 삐악!”을 외친다. 야고보 수녀님이 젤리 몇 봉지를 주시며 “누구 줄거니?”라고 물으시면, 자기 나름의 좋아하는 친구들 리스트가 나오고 그 중 일등은 케피다. 아기집에 들어가자마자 키 크고 무서운 막센한테 한 봉지 빼겼지만, 그리 개의치 않고 쿨 하게 내어주는 레스땡. 꽃동네 어딜가나 여기저기 레스땡을 부르는 소리가 가득 찬 꽃동네 제일의 인기남이다. 일년의 시간 동안 아이의 내면에는 사랑이 들어 찼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다리로 세상을 걷게 되었다.
내가 꽃동네를 떠나기 전날, 여섯 명의 장애를 가진 천사들이 꽃동네에 들어왔다. 꽃동네 수도자 분들은 매달 빵과 음료를 가지고 국립병원을 방문하신다. 배고픈 분들에게 먹을 것을 드리고,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쓰레기장이나 샤워장에 버려진 분들을 꽃동네로 모셔 오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곳 쓰레기장과 샤워장에 장애 아동들이 버려진다. 두 달 전부터 꽃동네로 데려오기 위해 기다리던 여섯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관공서의 늦은 행정 처리와 무관심에 두달의 시간이 지났는데 마침 아이들을 데려가도 좋다는 전화가 온 것이다. 원장 수녀님이 병원 관계자를 만나는 동안, 도마 수사님은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병원 이곳 저곳을 보여 주셨다. 환경은 열악했고 환자들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수사님은 샤워장이 텅 빈 것을 보며 놀라워 하셨다. 대부분은 이 곳에 시체나 죽어가는 병자들이 버려져 있는데 오늘은 의외라고 하셨다. 더러운 때를 씻는 샤워장에 아직 살아 숨쉬는 생명을 버리는 곳. 그리고 그들을 예수님처럼 모셔와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치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아 병동에 도착하니 병실 한 가운데에 여섯 개의 침대가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아이가 철장처럼 둘러친 철제 크립 안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자폐 등 복합 장애를 가진 아이는 이제 여섯 살이 되었을까. 잠시 얼굴을 내려다 보다 아이를 들어올려 안았다. 옆에 서 있던 병원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아이가 목과 팔을 무니 조심하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안고 있으면 사지를 흔들고, 내려 놓으면 잔뜩 화가 나 크립 사이로 팔이 낀 채로 온 몸을 비틀며 틀어대는 바람에 안았다 내려 놓았다를 반복해야 했다.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치고 아이들을 차로 옮겼다. 네명의 아이들은 각자 안아서 옮기고, 큰 아이 둘은 휠체어로 옮겨 차에 태웠다. 병원을 나와 꽃동네로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잠시 차를 세웠고, 원장 수녀님이 잠시 후 양 손에 먹을 것을 가득히 사오셨다. 각자 안고 있는 아이에게 빵과 요거트 등을 먹이는데, 이 녀석들 참 잘 먹는다. 입에 넣어주는 대로 잘 먹고, 주고 또 줘도 계속 받아 먹었다. 의자 끝에 간신히 균형을 잡고 앉아 있던 키가 큰 안젤라도 결국 차 바닥에 내려 앉아 수녀님이 주시는 빵을 받아 먹었다. 덜컹 거리는 차에 앉아, 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공포와 불안과 화를 온 몸으로 맞서 저항하던 아이는 어느새 작은 새처럼 안겨 있었다.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 놓으니 벌써 한 식구처럼 보였다.
수녀님들과 신부님, 수사님들은 이 아이들을 또 얼마나 예뻐해 주실까. 날이 지고 아이들이 잠든 어느 밤에 천사의 집에 들렀다. 다들 잠들었나, 어떻게 자나 조용히 문 밖에서 살짝 들여다 보고 싶었다. 한바탕의 소란을 마치고 고요히 잠든 시간에 시몬 수녀님이 아이들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쓰다듬고 기도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불 꺼진 방에서 아이들이 깰까 조용한 나비처럼 아이들을 살피고 계셨다. 오늘은 아이들이 어떻게 지냈을까. 요한 수사님의 사랑 가득한 목소리는 오늘도 천사의 집을 넘어 마당까지 흘러 나왔을거다. “내 딸 사라야, 사랑하는 내 딸 사라야, 내 딸 사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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