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꽃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10/16/2017~10/20/2017 7-2부 > 테마가 있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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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꽃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10/16/2017~10/20/2017 7-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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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지아
댓글 0건 조회 20,860회 작성일 17-11-05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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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꼭대기 마을에 나란히 앉아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수녀님은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장교로 전역하셨다. 마을로 오는 길에 강을 건넌 후에는 간호장교때의 일화를 얘기해 주셨다. 수박 열통을 사서 진료를 보러가는 길에 군용차가 진흙에 빠지자 이를 돕던 이들의 차까지 빠져 버렸고, 진료는 그만두고 그 자리에 앉아 함께 수박을 깨 먹었다고 했다. 작은 체구지만 다부지고, 강하지만 부드러운 원장수녀님이 군복을 입는대도 참 잘 어울릴거라 생각했다. 수녀님은 전역 후 음성 꽃동네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그곳에서 직종이 다른 병원 동기들과 기숙사를 같이 쓰며 즐겁고 추억이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는 말을 하실땐 입가에 즐거운 미소가 만연했다. 자연스럽게 수도자들과도 가까워 지셨다. 모태신앙이지만 본인의 성소에 대해 알지 못했던 시간에, 성령 8주간 세미나를 통해 살아계시고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만난 후 꼿동네 수녀원에 입소하셨다. 입소 후 첫 소임지는 조지아 꽃동네. 7년을 그곳에서 소임하시고 NP 면허를 취득하신 후, 아이티 꽃동네 원장수녀로 임명을 받았을때  집에 계신 어머니가 꾸신 꿈을 들려주셨다.   꿈1. “엄마가 살고 계신 섬마을에 외국 사람이 있었대. 사람들은 그를 ‘헬로우'라고 불렀다네. 그런데 우리 엄마가 꿈에서 그 ‘헬로우'를 무척 좋아해서, 어느날 그 집에 밥을 해주러 가신다는 꿈이였어. 엄마가 나한테 이 꿈 이야기를 해 주었을때 나는 그게 어떤 꿈인지, 무엇을 의미하는건지 단번에 알 수가 있었어. 내가 차마 엄마한테 아이티로 간다는 말을 꺼내기 힘들걸 아시고, 하느님이 미리 엄마를 준비해주신 거였지. 그래서 아이티로 떠나기 전에 엄마한테 그 꿈에 대해 이야기 해줬지. ‘엄마, 내가 그 꿈을 해몽해 줄께. 그 섬은 아이티라는 섬나라야.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그 ‘헬로우'는 예수님이고. 그런데 바로 내가 그 섬나라로 예수님 밥해주러 가게 됐네 그래. ‘. 엄마는 그렇게 나의 아이티 소임을 받아들이셨지.”   아이티 꽃동네 원장 수녀로 임명이 된 수녀님은 큰 압박과 걱정으로 마음이 힘들었다고 하셨다. 소임이 정해지고, 이후 임명장을 받을때까지도 원장이라는 자리로 가게 될 줄은 모르셨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큰 압박감에 짖눌릴때 꾼 꿈을 들려 주셨다.   꿈2. “내가 커다란 경기장에 혼자 서 있었어. 바닥이 흙으로 된 큰 야구 경기장 같은 곳 이였지. 그런데 나는 할머니들과 같이 먹으려고 피자를 주문하고 기다리던 참이였지. 그런데 저 경기장 끝에서 시커먼 파도가 나를 향해 엄청나게 밀려들기 시작했어. 나는 죽어라 달려 경기장 밑으로 난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궜지. 너무나 무서웠거든. 그래서 두려움에 떨며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가 방안을 둘러 보았어. 그런데 그 방이 깊은 바다에 있는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색깔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거야. 그때 나는 알았지. 이게 두려움이라는 것을.”   수녀님은 이후 그 심한 심리적 압박감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꿈을 이야기 해주셨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꿈은 나의 기억에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아주 조금도, 실마리를 찾아낼 단서도 없이 통째로 빠져 버렸다.   수녀님은 꿈을 통해 심리적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고, 소임받은 아이티 꽃동네의 원장 수녀로의 삶을 시작하셨다. 아픈 사람을 데려오려면 갖춰진 시설이 필요 했다고 하셨다. 아픈 사람을 받을 수 있는 병동. 그래야 길에 버려저 다리가 썩어 문드러지고, 국립병원 화장실이나 샤워장에 버려진 아픈 사람들을 모셔와 치료할 수 있으니까. 이를 위해 쌍떼라는 중환자동을 짓게 된 사연을 말씀해 주셨다. 아이티 꽃동네는, FFP에서 기존에 있던 가난한 이들의 공동체를 맡아 달라는 특별한 ‘초대'를 음성 꽃동네로 보냈고, 그에 응답해  수도회를 파견하여 이루어진 곳이다. 초기에는 아픈 사람을 돌볼 수 있는 곳이 없었기에 수녀님은 계획을 세우고도 공사에 필요한 비용에 고민하던 상황이였다. 하느님께서는 수녀님의 계획과 바람을 아시고 이에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들려주셨다. 어느날 FFP 직원 산드라라는 (초기에 꽃동네 수도회를 찾아 아이티로 초대하고 이후 프로젝트를 함께한) 직원이 거액의 도네이션 투자자와 마을을 방문하였다. 이 투자자는 꽃동네의 영성과 모든것을 사랑하였고, 이에 수녀님이 계획하시는 병동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비해 주었으며, FFP와 조지아 꽃동네의 지원으로 건물을 세워 지금의 중환자 병동이 설립된 것이다. 쌍떼는 남자동과 여자동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10명씩 20명의 환자들을 입원치료 할 수 있다. 모두가 연고가 없는 분들이다. 뼈가 부러진채 수술을 받지 못해 부러진 곳이 부은 환자, 당뇨로 다리가 썩어 들어가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환자, 에이즈 환자, 폐가 좋지않은 환자 등. 모두가 거기서 꽃동네 식구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산을 내려가기 전 마을 학교를 둘러보기로 했다. 변호사 아저씨는 그곳의 교장선생님이기도 했던 것이다. 교실 밖에서 보겠지 라는 생각 이였는데, 아저씨는 우리를 교실로 데리고 들어가 학생들에게 소개 해주었다. 첫 반은 맑은 눈과 큰 웃음을 가진 9학년반이였다. 원장 수녀님은 학생들에게 박자가 들어간 신나는 박수와 두 팔을 들어 머리위로 하트를 만들며‘사랑합니다'라고 하는 인사를 가르쳐 주셨다. 유창한 크레올과 차분한 무대체질의 수녀님에 맞춰 학생들은 깔깔깔 웃고 두 팔로 큰 하트를 만들며 ‘사랑합니다'라고 외쳐 주었다. 다른 학년의 교실도 돌아보며 박수와 사랑합니다를 가르치고서 학교를 나섰다. 이 높디 높은 곳에 저 많은 아이들이 있고, 희망적이지 않은 미래 안에서도 지금을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차에 힘이 들지 않고, 수녀님에게 시야 확보가 좋아 조금은 덜 수고로웠다. 아무도 없는 산중턱에서 앞서 가고 있는 엄마와 열살 남짓한 아들을 보고 수녀님은 차를 세웠다. 가는 곳까지 태워준다는 말에 모자는 차에 올랐고, 향긋한 허브냄새가 차안을 가득 채웠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산을 내려와, 다시 강을 건넜으니, 이 모자는 그 길을 걸어내려 오려고 했다면 해가 지기 전에는 도착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원장수녀님은 나에게 말씀하셨었다. “하느님은 참으로 섬세하시고 배려심이 깊은 분이시죠.”라고. 아까 마음 졸이며 건넜던 그 강에는 작은 트럭이 시동이 꺼진채 물에 빠져 있었고, 덤프트럭이 체인을 걸고 후진으로 끌어 내고 있었다. 트럭이 물에서 나오자 우리는 다시 강 앞에 섰다. 성호를 긋고 ‘아이고 주여'를 외치며 수녀님은 거침없이 엑셀을 밟아 단숨에 강을 빠져 나왔다. 우리는 다시 기뻐했고, 다시 감사드렸다. 아침 7시에 아침을 먹고, 오후 4시에 산을 내려 올 동안 우리는 크래커 몇개와 물 밖에 마시지 않았다. 원장 수녀님은 잠시 마트에 들려 빵과 아이스림을 사 주셨다. 처음에 민트초콜렛칩 아이스크림을 고르셨던 수녀님은, 내가 고른 체리 아이스크림에 럼이 들어있다는 걸 듣고서 같은걸로 마음을 바꾸셨다. 우리 취하면 어떡하냐는 나의 말에 수녀님은 운전은 끄떡없다고 하시며 함께 웃었다. 산을 내려온 후엔  엉망진창인 시내의 길마저 꽃길처럼만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수녀님은 쓰레기마을에 들러야 한다고 하셨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 수업료와 가방을 전해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대충 사정은 알고 있었지만, 마을은 상상을 초월했다. 마을의 입구부터 쌓인 쓰레기 산들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군데군데 검은 연기를 내며 쓰레기들이 음침하게 타고 있었다. 검은 연기와 매케한 냄새 사이를 아이들, 어른들, 그리고 개들이 헤집고 다녔다. 그 집 앞에 차가 도착하니 아이들과 남자들이 몰려 들었다. 큰 나무 밑에는 건장한 젊은 남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날카로운 눈으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쓰레기 천조각과 낡은 슬레이트판, 검은 비닐을 대충 짜맞춰 지어진 움막들 사이사이로도 남자들과 아이들이 앉아 우리를 바라봤다. 난 무서웠다. 지금 이곳에서 누군가 나를 죽이거나 해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곳 이였다. 어떤 이들 둘이 싸우다 깨진 병조각으로 상대방의 목을 따고 시체를 쓰레기더미 위에 버린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그런 곳 이였다. ‘마마 마지아'를 외치며 계속 무언가를 달라는 남성은 우리 뒤를 쫒아 그 집까지 들어왔고, 밖에 서 있던 아이들도 따라 들어왔다. 원장 수녀님 뒤를 따라 집이라고 불리는 움막을 들어서자 벌거벗은 작은 아이들이 눈에 띄였다. 그리고 파리들. 입을 열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은 새카만 파리떼가 사방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바닥에 쌓인 쓰레기 봉지에서 끝없이 무언가를 찾고있는 부모에게 수녀님이 가방 세개를 전해주자, 가방안에 있는 신발들을 꺼내 아이들에게 신겨 보기 시작했다. 속옷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아이들이 수녀님이 가져온 신발만 신고 얼굴 한가득 웃음을 띄고 있다. 여덟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부부는 넷은 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나머지 넷은 이곳에서 키우고 있었다. 수녀님은 부모들과 이야기하고, 아이들을 하나 하나 안아주고서, 등뒤로 ‘메시 마마 마지아'를 들으며 다시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 어제 신부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어떤 삶이든 간에 살아 있으니 좋은것 아니냐는 나의 말에,‘어떤 경우에는, 너무 처참해서, 도저히 너무 처참해서요...’. 라고 말하셨다… 나는 이제 삶에 대한 내 생각 따위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삶을 만드신 분 외에는 아무도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꽃동네로 돌아오는 길. 성모상 앞의 작은 풀밭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묵주기도를 드릴 시간이였다. 발전기가 윙윙 거리며 돌아가고, 하루를 마칠 준비를 하는 시간. 어둠이 내리고, 아홉시에 발전기가 꺼지면, 하루를 봉헌하며 내일을 기다리는 곳. 또 다시 새벽 5시에 발전기가 윙윙 돌아가고, 하나 둘 미사를 드리러 들어오고, 밥 짓는 연기를 피우는 곳. 아기들이 밥달라, 안아달라, 칭얼대면 문앞을 지나는 할머니가 들어와 그 아기들을 어르는 곳. 바람이 수녀님들의 종종 걸음에 맞춰 하얀 머릿수건을 하늘로  띄우는 곳. 동네를 고치러 수사님의 자전거는 쉼없이 구르고, 그 뒤를 따라  개 두마리는 더운 줄도 모르고 하루종일 뛰어다니는 곳. 길가에, 국립병원 샤워장에 버려진 어른과 아이들을 쉼없이 모셔오는 곳. 그들을 닦이고, 배불리 먹이며, 치료하고 잠을 재워 주고, 하느님을 모시게 하는 곳. 그 곳이 오늘 나의 집이다. 그리고 그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좋다. ‘마마 마지아'. 쓰레기 동네의 무서운 남자는  원장수녀님을 그렇게 불렀다. 수녀님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그 이름을 듣는다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그렇게 부를것이다. ‘마마 마지아’라고. 밤에 숙소로 돌아와 어두운 화장실에 후레쉬를 밝히고 옷을 빨기 시작했다. 쓰레기장 마을에 사는 여덟 아이의 엄마 체격이 나와 비슷한것 같았다. 옷과 양말을 빨며 왜 이리 가진게 없을까 생각했다.   오늘에 와서야 나는 내가 이곳에 오게된 이유를 알것만 같다. 온 날부터 머리가 멍하고, 무언가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었다. 모든 욕구는 잠이 들고 무기력해졌다. 기도시간과 식사 시간 일정을 듣고, 듣고, 또 들어도 머리는 다시 텅 비어 기억할 수가 없었다. 수사님과 수녀님이 어딘가에서 나를 찾아 밥 먹으라 일러 주셨고, 가라는 곳을 가고, 하라는 일을 하였지만 머리는 생각의 기능이 정지되어 버렸다. 입맛을 부드럽게 해 주시어, 무엇이든 어렵지 않게 먹었고, 갈증 날때는 물을 마시고, 말도 통하지 않는 레스땡과 깨삐와 앉아 놀며 오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기도 시간에 함께 앉고, 미사 시간에 그들의 말에 귀를 열어 두고 멍한 마음으로 그저 듣고 있을 뿐이였다. 환자들의 드레싱을 교환하고, 정맥주사를 놓고, 목욕을 시키고, 침상을 만들었다. 쉼없이 움직이지만 생각의 기능이 정지된 머리는 쉬고 있었다. 하느님은 나를 쉬라고 이곳에 보내신 것이다. 생각하지 말고, 계획하는 것을 그만 두고, 앞으로 가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어라. 하느님은 내가 쉬길 바라셨다. 당신을 위해 무언가를 계획하고, 당신을 위해 열심히 달리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을 위해 쉬길 바라셨다. 고집불통 아무 말도 듣지 않는 나를 삶에서 빼내시어 이곳에 보내신 것이다. 쉬어라, 그리고 보아라, 내가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사랑한다. 사랑해라.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알고, 단 한가지를 바라셨다. 나의 휴식을. 그리고 그 휴식을 일반적이 아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선물해 주셨다. 하느님은 참으로 섬세하시고 배려심이 깊은 분이시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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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는 사랑의 결핍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아무 말 없이 죽어가는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들을 따뜻이 맞아들여 먹여주고 입혀주고 치료해주며,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살다가 돌아가시면 장례해드리는 데까지 보살펴드리는 사랑과 구원의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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