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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꽃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10/16/2017~10/20/2017 7-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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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지아
댓글 0건 조회 23,728회 작성일 17-11-05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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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2017, 넷째 날 _ 원장수녀님과의 외출.   새벽 다섯시에 수탉이 울고, 발전기가 윙윙 돌아 가며 마을에 빛을 만들어 주기 시작했다. 이 소리들은 마치, 하느님은 오늘을 열어 주시니, 어서 일어나 그 안에서 주신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가라고 속삭이시는 것 같다. 미사 후의 아침기도. 여러번 해도 순서는 헷갈리지만, 이제는 제법 그 선율이 익숙해 지고 있었다. 수도자들의 하루는 성스러운 시작과 거룩한 마침으로 그 안의 모든 일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침기도 후 잠시 유아방에 들러 아이들을 살펴봤다. 익숙해지는 얼굴들, 울음소리, 하나 하나의 눈빛. 어제 병원에 가느라 하루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파김치가 되버린 쥴리엔과 레스땡은 다시 생기를 찾았다. 개구쟁이 레스땡. 짝짜꿍과 하이파이브를 가르쳐 봐도 자기 기분에 따라 멋대로 하는 새침떼기. 새로운 것이 보이면 호기심에 불이나케 기어가는 녀석. 이 아이의 웃음과, 깁스를 허벅지까지 한 다리로 여기저기 부산히 기어다니는 모습이 많이 그리울 것이다. 천사같은 쥴리엔의 깊은 눈빛과 맑은 웃음도. 오늘 아침은 아이티식 스파게티와 커피. 하느님은 나의 입을 부드럽게 하시어, 그 어떤 음식도 무난히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설거지를 하고 쌍떼에 들러 환자들을 돌아봤다. 기침이 끊이지 않는 할머니에게 청진을 해보니 오른쪽 폐에 wheezing이 들렸다. 원장 수녀님은 열이나 다른 증상이 없고,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한다고 하셨다. 거동 자체가 불가능한 분들을 모시고 국립병원으로 검사를 하러 가도, 검사실은 2층에 있고 모든 프로세스가 불편해 만만치 않다고 하셨다. 할머니에게 정맥주사를 새로 놓고, 환자분들의 목욕과 침상 정리를 도왔다. 원장 수녀님과 나갈 시간이 되어 윌리, 티가와 함께 밴에 올랐다. 수녀님을 따라 산골 마을에 쌀을 전해주는 날이다. 몸이 좌우로 쉴새없이 요동치는 아이티의 길을 따라 티가를 먼저 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현지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는 고만고만한 녀석들이 학교 울타리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틈에서 티가가 깨삐를 찾아냈다. 친구들 사이에서 웃지도 않고 주눅들어 앉아 있는 깨삐. 이름을 불러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다. 수사님께 물으니, 꽃동네에 오기전에 지내던 고아원에서도 장애를 가진 깨삐는 친구들에게 외면당하고 늘 구석진 곳에 슬픈 얼굴로 앉아 있었다고 했다. 개구쟁이 소녀가 가장 크게 웃고, 여기저기 워커를 드르륵 거리며 휘젓고 다닐 수 있는 곳은 꽃동네집 한 곳 뿐인가 보다. 마지아 수녀님은 현지 변호사 아저씨를 태우고 나자 산꼭데기 마을을 향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들어서더니 이내 산속을 달리다가 길이 끊어졌다. 비 온 뒤 불어난 강물이 강바닥의 흙을 휘저어가며 거센 물살로 내달려 우리 앞을 막아 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넓은 강변 군데 군데 덤프 트럭이 오가며 자갈을 실어 가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줄기에는 여인들과 아이들이 옷을 벗고 목욕과 빨래를 하고 있다. 벗은 몸으로 강건너 우리를 쳐다보기도 했다. 원장 수녀님과 변호사 아저씨는 차에서 내려 강가에 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아이티의 험한 길에서 핸들을 360도 좌우로 틀어가며 곡예하듯 차 사이를 오가고, 거침없이 엑셀을 밟으며 머릿수건을 휘날리는 우리 원장 수녀님이라도, 바퀴가 큰 돌덩이 같은 도요타 랜드크루저라도, 이 강을 건너는건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수녀님은 운전석으로 돌아와 강을 건너기로 마음을 먹었다. 단단히 핸들을 잡고, 다리를 쭉 뻗어야만 엑셀을 세게 밟을 수 있는 작은 키로 강을 향해 차를 굴리기 시작했다. 바퀴가 강에 들어 섰을때 우리 모두는 성호를 그었고 이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기를 하느님께 기도 드렸다. 차가 강물에 들어서자 ‘차르르’ 물을 가르는 소리를 들으며  무사히 강을 빠져나왔다. 여기저기 깊이 패인 구덩이들을 지나 다시 산으로 오르는가 했더니, 한바퀴를 휘 돌아 다시 강변을 내려와 달리다 산속으로 다시 들어 섰다. 길도 제대로 닦이지 않은 산을 휘휘 돌아 꼭대기까지 오르더니, 산등성이들을 넘으며 우리는 더 높이, 더 높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차는 물론, 올라가는 차도 만나지 못했다. 아낙들이 산에서 꺽은 허브나 수확한 곡식을 당나귀에 실거나 등에 짊어지고 어디론가 가고 있을 뿐이였다. 길을 안내해 주겠다며 젊은이들 둘이 차 뒤에 매달렸다 본인의 목적지에 도착하자 훌쩍 뛰어내려 손을 흔들며 가벼렸다. 어느새 Port-Au-Prince 시내는 점으로 가득찬 작은 가게 같이 보이고, 외길 옆에는 천길 만길 낭떠러지가 까마득히 놓여있었다. 원장 수녀님은 지난번에 왔을때와는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길이 변했다고 하셨다. 비가 오면 흙이 쓸려가고, 돌들이 굴러 떨어지고, 그대로 땅이 굳어 깊이 패이고 갈라지며 새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운전해서 갈 수 없을것 같은 그 길을 원장수녀님은 끝없이 올라가기만 할 뿐이였다. 산등성이가 완만해지자 검은 로마 숫자가 새겨진  하얀 십자가가 낭떠러지 옆에 세워져  있었다. 수녀님은  사람들이 길 위에 세운 십자가의 길이라고 알려주셨다.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하얀 하늘과 구름 아래, 아이티를 바라보며 열네개의 십자가가 산길을 따라 세워져 있는 것이다. 수녀님은 마을에 가는 길에 지난번 방문때 만났던 외딴 집에 사는 사람들을 잊지 않으셨다. 혼자 사는 할아버지를 찾아 집을 살피고, 나무에 찔려 부은 다리를 걱정하고, 쌀을 전해 드렸다. 이 할아버지가 더 나이가 들고 혼자 사는게 힘들어진다면 아마도 원장 수녀님이 데려가실 거라고 생각했다. 세 아이가 있는 집을 찾아가면서는 차를 세우고,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수녀님 뒤를 걸어가는데 발목 조금 위까지 떨어진 수녀복 아래로 수녀님의 맨 다리가 풀에 쓸리고, 까칠한 가시들이 찔러대는것이 보였다. 집에 도착하자 이제 갓 돌이 되었을까 싶은 벌거벗은 아기와 , 조금 큰 아이 아이 둘을 만났다. 마당 한구석에  나뭇가지 몇개를 세우고  새카만 냄비만 덩그러니 놓였 있는 그 곳이 주방이라고 하셨다.  쌀을 드리고 잠시 앉아 아이들을 한번씩 안아보고 나서야, 다시 차를 타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마을로 곧장 갈거라고 하셨다. 길은 더욱 험해지기 시작했고, 과연 이 길을 지나간 차가 있기나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낭떠러지를 따라 좌우로 흔들리며 기어도 올리지 못하고 한참을 달렸다. 갑자기 땅이 벌어진 틈 사이로 바퀴가 빠져 시동이 꺼지더니 차가 뒤로 천천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미끄러져 바로 옆 낭떠러지로 빠지면 우리는 모두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녀님은 신속히 기어를 바꾸고 다시 시동을 걸어 조금 전 미끄러진 길을 살짝 비켜 그 곳을 빠져나왔다. 그 후로 우리 넷은 침묵했다. 조용히 길을 지나갈 뿐 이였다. 큰 돌에 튕겨 차가 기우뚱 기울어질때는 죽음을 그냥 받아들이자는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감히 무서움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길을 지나갔다. 차를 돌릴곳도 없었기에 우리는 그저 앞으로 나갈 뿐이였다. 길은 더욱 좁아져 자전거 한대 지나갈 만한 폭을 달리자니, 양 옆의 나뭇가지들이 사정없이 창문 안으로 우리를 때리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앞으로 나갈 힘만 쓰기 위해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고 산을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문을 올리고,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하얀 흙먼지를 가르며 제일 높은 산꼭대기 마을에 도착했다. 이 곳은 변호사 아저씨의 고향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 지금은 시내에서 변호사 일을 하고 있다. 꽃동네와의 인연으로 법률적인 자문이나 일처리에 도움을 주고, 자신이 자란 동네에 쌀을 전해 주기 위해 원장수녀님과 이 곳을 찾은 것이다. 몇시간이나 올라왔을까, 시간을 확인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우리는 그저 이곳에 왔다는 것에 마음이 놓였고, 쌀이 창고에 들어가는 것에 기뻐할 뿐 이였다. 큰 나무 아래 놓인, 등 없는 의자에 원장 수녀님과 나란히 앉았다. 시원한 바람을 마시고, 끝도 없이 멀리 있는 시내의 실루엣을 바라 보았다. 이방인이 왔다며 모기들이 윙윙거리고 쉴세 없이 살을 찌르고 피를 빨아대는 탓에 두 손을 휘휘 저으며 우리는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성소를 받으시고, 입소하시고, 첫 소임지에서의 생활, 지금의 어려움과 고민들을 가만가만 풀어 놓으셨다. 흰 바람이 수녀님의 하얀 머릿 수건을 하늘로 날리는 것을 보며 그곳에 계신 분을 생각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우리를 만드시고, 서로 돌보고 사랑하며, 자신까지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걸까. 이렇게 작은 여성이 어떻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는건지, 하느님의 계획과 힘이 얼마나 크신지 나는 옆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원장 수녀님의 말들은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달래고 꺼내, 같이 바람에 실려 가자며 산너머로 흘러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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