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꽃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10/16/2017~10/20/2017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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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2017 , 셋째날
_ 신부님과의 외출.
아침
미사와 기도를 마치고 잠시 유아방에 들렀다가 신부님을 따라 나섰다. 입소 신청 하신 할머니를
방문해 생활 사정을 알아본다고 하셨다.
새로
일을 시작한 여직원 둘과 함께 차를 타고 처음 간 곳은 대사 주교님이 사시는 곳이였다. 신부님은‘여기가
아이티에서 제일 부자 마을이예요.’라고 말해 주셨다. 산을
높이 올라 갈수록 높은 담벼락에 싸인 큰 저택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경비가 입구에서 차를
세우고 신부님의 신분증을 받아 꼼꼼히 살핀
뒤 우리가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었다. 입구에서 더 차를
몰아 대사 주교님이 사시는 저택 앞 정원에 차를 세웠다. 아름다운 건물이였고,
어느
부자의 여유로운 별장 같았다. 저택 뒷쪽 정원으로 돌아가니 좌측으로 해안가가 맞닿은 아이티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대사 주교님을 만나기 위해 저택 안으로 들어서니 안쪽에서 개 두마리가
불이나케 달려 나왔다. 훈련이 잘된 크고 날씬한 개 두마리는 아주 충실해 보였다.
대사
주교님이 나와, 우리를 맞아 주셨다. 동그란
눈에 맞춘 것 같은 동그란 안경을 쓰고, 양볼이 조금 불그스레한
대사 주교님은 키가 크고 배에 군살도 없어 보였다. 나중에 신부님께 물으니
아일랜드 분이라고 했다. 신부님께 크레올로 안부를 묻고, 나에게도
간단히 몇가지를 영어로 물어 주셨다. 신부님과 나는 큰
테이블이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고, 다시 주교님을 기다렸다.
“신부님,
여기
왜 온 거예요?. 말씀 나누셔야 할 텐데 잠시 나가 있을까요?”
“괜찮아요
자매님,
계셔도
돼요.
수금하러
왔어요.
오늘
대사 주교님이 계셔서 다행이네요. 안계시면 못 받거든요.”
신부님은
로마에서 파견한 대사 주교님과 보좌관, 현지 직원들을 꽃동네에
가입하게 하시고 매달 수금을 다니신다. 그외에도 많은 아이티
현지인들이 적은 금액이라도 꽃동네를 후원한다고 하셨다. 잠시 후 주교님이 들어와 신부님이 가지고 있는 장부를 확인한 후 빳빳한
백불 지폐를 태이블에 내려 놓으셨다. 지갑에서 갓 나온
구김없는 지폐가 허리를 둥글게 접은채 잠시 테이블에 있다가 곧 신부님에게 들어갔다. 감사
인사를 마치고 저택을 나오던 중 보좌관을 만났다. 작고 통통한,
역시나
동그란 안경을 쓴 이탈리아 출신 보좌관이였다. 주교님과는 대조적으로,
친근하고
거리낌없는 태도로 신부님과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뉴저지 버겐카운티에
자기 친구가 있다며 나와도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보좌관의 지갑에서도
빳빳하고 깨끗한 지폐가 나왔다. 한 손에는 페이퍼 박스가 들려 있었는데,
아마
식사 후 드실 디저트가 아닐까 생각했다. 보좌관이 떠나고,
신부님은
직원들에게 수금을 하고 오겠다며 다시 안으로 들어 가셨다. 정원에서 산책하던
여직원 둘은 갑자기 개 두마리가 물어 뜯을 듯이 달려드는 바람에, 쫒기는 신세가 되어
타고 온 트럭 짐칸에 올라가 있었다. 차 문을 열어 여직원들을
들어가게 하고, 나도 차에 올라 신부님을 기다렸다.
잠시
후 신부님이 운전석에 올랐고, 오늘은 직원들 수금을 하나도 못받았다고 하셨다.
“계속
오면 되요. 꾸준히 오는게 중요해요.”
라는
신부님의 말을 들으며 경비실에서 신부님 신분증을 찾고 부자 마을을 내려왔다. 대사 주교님은 부유한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아름다운 저택에 앉아 계신다. 멋지게 셋팅 된 테이블에서
손님을 맞아 함께 식사하고, 보좌관이 사 온 디저트를 드시겠지.
식사
중 아이티의 현실에 마음아파하면서도 맛있는 식사를 칭찬하겠지. 나는 불쑥 신부님께
“저는
로마에서 파견되셨다는 주교님 하나도 안 존경해요. 우리 꽃동네 신부님,
수녀님,
수사님들을
더 존경해요.”
라고
말했다.
신부님은
피식 웃으셨다. 나의 무지함은 더 크고 넓은 일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생각의
오류와 어리석은 반감에 나를 가두었다. 문득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분이 참 작고 낮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소
신청 가정을 방문하기 위해 시내를 달리던중 갑자기 신부님이 길가에 차를 세웠다. 신부님
시선을 따라 가 보니, 길 건너편에 벌거벗은 여자가 주차된 차들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오가는
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유턴을 한뒤 여자 가까이 차를 세웠다. 여직원과 신부님이
그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는 이십대 초반으로 보였다. 입소를 권유하는 말을
듣자 여자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팔을 크게 휘젓고, 흥분해서
차도 위 아래를 빠르게 걸어 다녔다. 신부님이 마시라고
플라스틱 콜라병을 주자, 벗은 몸에 뿌려대기 시작했고, 갈색의
콜라 거품은 여자의 머리서 부터 흘러내렸다. 지나가는 차들을 손으로
쳐대고,
길가에
버려진 병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화가 단단히 난듯 소리를 지르고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데려가기는 힘들겠다며 신부님과 여직원이 차로 돌아왔다. 여자는 떠나려는 우리를
보고 차 후드에 딱
붙어 길을 가로 막았다. 팔을 벌려 차를 잡고, 양
손으로 차 후드를 치기도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어라 소리쳤다. 여자의 흥분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고, 바닥에서 보이는대로 음료수 캔과 플라스틱 병들을 후드에 난 구멍으로 구겨넣기
시작했다. 신부님은 간신히 차를 돌려 유턴을 한 뒤 길가에 세우고,
후드를
열어 구겨진 캔과 플라스틱 병들을 꺼내셨다.
“많이도
넣었네.”
화를
내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그렇게 말하셨다. 다시 길 위의 차들
속으로 들어가 운전을 하는가 했는데, 조금 못 가 다시
차를 세우셨다. 지나는 골목에 혼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보셨기 때문이다.
차를
유턴하고 길을 되짚어 올라가 그 골목이 있는 곳에서 다시 유턴해 할아버지를 살피기 위해 차에서 내리셨다. 온몸은
찌든 때와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골목길 담벼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발 옆에서는 살을 뜯어 먹고 내던져진 오래된 작은 닭뼈 조각이 떨어져 있었고, 그
주위를 개미들이 부지런히 오가고 있었다. 신부님과 여직원은
할아버지에게 입소를 권유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고, 시선을 피해 먼 곳을 바라봤다. 신부님은
할아버지에게 안수해 주셨고, 우리는 다시 차에 올랐다.
“자기
짐이 있는 사람들은 입소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게 쓰레기봉투 뿐이라도
말예요.”
입소
신청한 할머니를 만나러 주택가에 차를 세우고 대문으로 들어갔다. 겉으로 번듯해 보이는
집 뒤로 돌아가니 허름한 움막같은 것이 있었다. 구멍나고 녹이 슨
슬레이트 판을 맞대어 세우고, 군데군데 비닐과 낡은 천이 걸쳐져 있었다.
입구를
가리기 위해 걸쳐놓은 천을 젖히자 할머니
한분이 누워 있었다. 흙바닥에 놓인 스폰지 매트리스에는 검은 곰팡이가 피어나고,
소변
지린내가 올라왔다. 할머니는 낡은 원피스 잠옷을 입고 있었고,
그
옆에는 스티로폼 그릇에 담긴 먹다 남은 밥에 파리 한마리가 윙윙거리며 붙어 있었다. 주변에는
낡은 나무조각과 철근들이 세워져 있었고, 세간살이라고 부를만한건
보이지 않았다. 슬레이트판의 구멍과 틈새들로 환한 빛이 듬성 듬성 들어 왔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축축한 바닥에 누워, 새는 빗물을 맞으셨겠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신부님은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것 저것 물어 보셨다. 70대,
연고는
없고,
할머니를
위해 입소 신청한 아주머니는 교회에서 몇몇 분들이 할머니를 챙겨드렸다고 한다. 할머니
상태를 확인한 신부님은 전화를 걸기위해 밖으로 나가셨다. 주변을 둘러보니 재래식
화장실이 움막서 열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거기서도 높은 계단
두개를 올라가야 화장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화장실은 어떻게 가셨을까.
일어날
수 있는지 묻자, 할머니는 앉아보려고 애를 썼다. 양쪽에서
부축하고, 들어 올리다시피 해서 겨우 일어났지만,
이
상태로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할머니를 다시 눕히자
신부님이 통화를 마치고 들어오셨다.
“밴을
가져와야 할것 같아요. 금요일 오전에 할머니를 모시고 갈 수 있겠어요.”
꽃동네로
돌아가는 길에 병원진료를 마친 아기 두명과 여직원 둘을 픽업해야 하는 상황이라, 할머니를
바로 데리고 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신부님은 할머니께
금요일에 데리러 오겠다고 전해드렸다.
“신부님은
하느님이 나를 데려가기 위해 보내준 천사예요.”
라고
할머니가 대답했다. 오늘이 수요일. 할머니는
이곳에서 금요일 오전까지만 버텨주면 신부님과 함께 꽃동네로 가신다. 문득 꽃동네가 하늘아래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다섯시에 발전기가 돌아가며 마을을 깨우고,
미사를
드리고,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아침공기 안에서 울려 퍼지는 곳. 그곳은 할머니에게
하느님의 나라였다. 할머니를 두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8월에
입소신청을 받았는데…”
라고
말하는 신부님의 무겁고 아픈 마음이 느껴졌다. 할일은 너무 많은데,
하루는
너무 짧은 꽃동네의 생활을 조금은 알기에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국립병원으로
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여직원 둘과 쥴리엔(4개월),
래스땡(2살)을
태웠다.
아이들은
다리 석고 깁스를 바꾸기 위해 병원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꽃동네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 기도를 마치고 쌍떼로 가는 길에 잠시 유아방을 들여다 봤지만
쥴리엔과 래스땡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의아했는데, 병원가는 날이라 아침
7시에
출발했기 때문이란다. 래스땡을 받아들고 뒷자석에 여직원들과 함께 앉았다.
차가
출발하자 래스땡은 내 품에서 곧 잠이 들었고, 앞좌석 여직원에게
안긴 줄리엔도 조금 보채다 곧 잠이 들었다. 이 작은 녀석들이
기존의 석고 깁스를 떼고, 새 깁스를 채우고, 마를때까지
기다리며 얼마나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을까. 작은 아이를 안고
덜컹거리는 차에 앉아 있으니 마음에 소금 주머니가 가라앉는것 같았다.
꽃동네로
돌아와 수녀님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수녀원 주방 공사로
오늘은 원장 수녀님이 마트에서 음식을 사오셨다. 현지 음식인데,
특히
‘레김'이라는
반찬이 참 맛있어 밥을 비벼 먹었다. 바나나 튀김과 토마토
등을 먹으며 오늘 봤던 그 여자의 이야기를 들려 드렸다.
“아마
남자한테 당한 나쁜 기억이 있거나, 시설에 감금되었거나 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원장수녀님의
말씀이 순간 머리를 멍하게 했다. 단순히 정신이 나간 여자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상처가 있을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얼굴이 확 달아 올랐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로
더 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고, 알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있다.
니꼴라
아저씩의 드레싱을 교환하고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누웠다. 바람에 뭔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왔다. 발전기는 벌써 꺼지고, 초
심지 한개가 방에 은은한 빛을 내어주고 있었다. 오늘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서로 교차하며 내 앞에 왔다갔다 아른거렸다. 오늘 밤도 잠을 이루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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