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꽃동네 :: Kkottongnae Ha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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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티 꽃동네 (Kkottongnae Ha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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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포토 앨범 (Photo)

  • Remy 집으로 돌아가다 ~
     레미 처음 국립병원에서 발견 되었을 당시에는 잘리 다리에 드레싱을 다 뜯어 놓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꽃동네에서 정신과 약을 잠시 복용하고 건강이 좋아지고 몸도 …
  • 직원체육대회
    하나가 되어라 라는 주제로 전체 직원 체육대회를 하였습니다.
  • 한창 뜨고 있는 쥬니오
    티셔츠며 잠바 그리고 작은 가방의 쌕까지 해서 70여개 이상을 몸에 걸쳐 입고 럭비 선수처럼 다니던 쥬니오.아이티 꽃동네로 모셔오긴 했지만 하루나 이틀만에 나가곤 하였다.또 길거리…
  • 첫 성소자 학교 이모저모
    2018.4월 첫 성소자 학교를 열었습니다. 많은 참석자가 있었고 기쁜 날이었습니다.희망의 씨앗을 뿌린 날이기도 하구요.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 photo zone in KKottongnae Haiti
    사랑합니다. ~~아이티 꽃동네에 새로운 포토존이 생겼습니다.그림 봉사해 주신 민 미카엘라 자매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 BMI 재미젊은이들과 꽃동네의 아름다운 만남
    더 높은 비상을 위한
    놀라운 만남이 이루어진 날~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그대들의 비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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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뉴스 게시판 (News)

헤르몬 산의 이슬처럼.

내가 걷는 십자가의 길 (2018 아이티 꽃동네)

사랑도 연습이 필요하다

사랑의 방주 한글 불어본

[묵상글]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

[좋은글] 기도는 기쁨입니다.

[사진] 성모 성심

[사진] 믿음의 증인

뻬용의 별바라기

  • 그냥 씻고 가신답니다
    멀리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돼지인줄 알았는데아주머니가 계시더군요꽃동네에 모셔와서 씻겨드리고 이제 여기서 사시면 되겠다 했더니다시 쓰레기 있는데로 돌아가신답니다.쩝......
  • 지금할수 있는 것을 하세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하는 것도 많습니다지금 할수 있는 것은 하세요우리 마을에 두분의 아이티 신부님이 있습니다 한분은 할아버지 신부님인데 은퇴하셨고 약간 치매도 있으시고....근데 할아버지 신부님이 예전에 자신을 위해서 돈을 모았다면 여기서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갈곳이 없어서 꽃동네에서 산지 이년이 다되어갑니다다른 한분은 머리를 크게 다치셔서 더이상 사제 생활이 어려우셔서 이곳에 오게 되셨습니다 모든것을 알고 느끼고 판단하지만 표현할수가 없으싶니다. 오늘 두분이 같이 뛰시네요 운동을 한다고 ... 젊은 신부님이 할아버지 신부님을 재촉합니다 쉬지 말고 뛰시라고 ㅋ
  • 참 잘했다 싶습니다....
    예전에 할머니 한분이 우리 마을에 찾아 오셨습니다.갈곳이 없다고 받아달라고 수줍은 모습을 하고 찾아 오셨습니다.행색은 걸인 같지만워낙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분명 할머니의 자식들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하지만 확인이 되지 않고 또한 제발로 찾아 왔으니 만큼 돌려 보내는 것은 다시 거리로 내모는 겪이니빈집을 하나 내어 주고 살게 했습니다.크리스티안 폴 할머니 참 기쁘게 사십니다.웃음이 떠나지 않네요 얼굴에서어제 새로 길거리를 해매던 할머니가 입소를 했습니다. 몸도 편찾으셔서 거동도 힘들고 그래서 크리스티안 폴 할머니에게 같은 방을 쓰면서 도와달라고 했는데..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더군요. 왜냐하면 자신도 몸이 편지 않아서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같이 쓰겠다고 하십니다.오늘 우연히 화장실에서 나오시는 크리스티안 폴 할머니와 같은방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게 됩니다.폴 할머니가 부축해 가시는 모습이 참....
  • USC 봉사자들
    아이티에 살다보니 아이티 사람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중국 베트남 남미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언어는 서로 부족하지만 하루 이틀 함께 지네면서 함께 기도하고 먹고....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대해 알고 기쁨과 아픔을공유하게 됩니다그들도 사람이라는 것을...ㅋ그들도 하느님이 이곳에 보네셨고 하느님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이란 것을...그래서 함께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그들이 변해가는 모습에 하느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합니다봉사에 감사드립니다
  • 째첩횁철 가정방문
    하느님의 일을하기 위해서는 때로 포기도 필요합니다

    어르신이 고향에 가시겠다고 며칠전부터 조르셔서
    저희가 모시고 산을 넘어 넘어 네시간에 걸쳐 근처까지 도착했습니다

    근데 이 할아버지가 $%&@!#?@$%$%?@?%&&?@?%.....
    ... 하시는데 도무지 알아들을수가 없었습니다

    여기가 아니라고 하는것 같았고 뭐라뭐라하는데....
    피곤도하고 다시 모시고 돌아갈려고하니 힘도빠지고 그래서 잠시기도했습니다
    지혜를 달라고....

    지나가던 아이티 사람을 붙잡아 설명좀해달라고부탁했지요 그사람이 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안내해달라고 했더니 자기가 돈이 없는데 밥을먹지 못했는에 도와줄수 있냐고하더군요....젠장.......

    얼마의 돈을주고 안내를 따라갔습니다

    얼마후 강가앞에 가더니 강너머 마을이라고....배를타고 건너야 한다고....
    휴.....

    차를 세우고 할아버지에게 맞냐고 했는에 이 할아버지가 안내리시는 겁니다....밥을먹고 가야겠다고.....
    화도 나지만 참고 잠시기도했습니다 지혜를 달라고
    그래서 말했지요 지금안내리면 다시 돌아갈것이라고....

    할아버지는 잠자코 내렸습니다

    배에 올라다고 사공에 몸을 밑기고 평화롭게흘러갔습니다

    건너편에 도달했을때 배가 뭍에 다았지만 내릴려니 바지가 물에 젖을수 밖에 없더군요...
    아....또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한 곳이었지만...그것과는 상관없이
    하느님은 또 나를버리라 하십니다 나는 깨끗하게 살기 원하지만
    하느님은 내가 좀 드러워져도 좋다 좀 챙피해도 좋다 하십니다.....

    풍덩.... 진흙에 구두와 바지가 엉마이되고

    간신히 도착한집 하지만 우리는 그 옆집에서
    복수가 차서 홀로 외롭게 지내는 다른 어르신을 뵐수 있었습니다
    ......같이 기도해주고 할아버지도 잘 모셔다드리고

    순간순간 좋은체험을주신 하느님께 김시드리게 됩니다.
  • 째첩횁철 입소 사건
    오히려 가난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더욱 크게도 해줍니다 겸손하게 해주고요... 차로 한시간거리에 있는 한 텐트촌에 가게되었습니다 많은 텐트들중에서 가장 작은 집안에는 이쁜 할머니가 살고 계셨습니다 ... 한손에는 성경책을 들고요... 자식들은 도미니카로 간뒤에 연락이 끈어지고.... 자녀에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싫어하는듯해서 더는 묻지 않았지만.... 느낌상 돌아올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를 만난 순간부터 연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오소서 성령님을 연신 외치며.... 길거리에서 구걸을하거나 이웃집에서 도와주시는 것으로 지내시고 계셨는데 그래서 어르신을 저희집에 모시기로 했습니다 할머니가 같이갑시다 하니까 참 고마워하십니다 이럴때 이기쁨은 하느님께 돌려야겠지요.
  • 째첩횁철 기도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을 키울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루동안부딪히는 일들안에서 사람의 생각으로 행동합니다

    하지만 기도로 믿음을 키워 나가는 사람은 어려운 순간에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떠올리며 하느님이 그 순간에 용기와 믿음과 사랑을 주십니다

    ... 그래서 더욱 믿음이 커지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여기우리 갈곳없는 어르신들이 그저 노인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기도하면 그들은 우리의가족입니다

    사진은 아침마다 머리정리하시는 어르신들입니다
    역시나 저보다 사진기를 좋아합니다^^See More
  • 째첩횁철 희망을 주는 아이티 꽃동네 1
    오늘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반겨주는 사람들은 어르신 분들이었지요
    많은 것을 잃어 본적이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의 소중함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꽃동네 가족들은 사람들을 좋아 합니다.

    한 할머니가 한참을 꼼지락 만들더니
    망고 나무 위로 망고를 딸려고 시도 합니다.
    힘들어 보이는데 그저 즐겁게 노래하면서....
    아직 익지 않았는데 왜 딸려고 해요 라고 했더니
    우리 시몬 수녀님이 따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냥 익으면 떨어질 텐데 괜한 고생이 아닌지...
    하지만 그저 작은 일이라도 남에게 필요하고 도움이된다는 사실이 우리 어르신들을 건강하게 합니다.

테마가 있는 하루

  • 하늘나라
    .....'모든 판단은 우리가 정한 것이고, 좋고 나쁘고의 구별이 없었습니다.''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제가 상처를 준 사람들의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고 그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곧 그들이 되었고, 그들이 곧 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사랑과 연민의 감정만이 남았습니다.  한사람의 인생의 뒷이야기에는 모두 사랑에 관한 것 뿐입니다. 화낼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절대적 자비와 사랑이 남을 뿐 용서할 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어미가 간난아기를 안고 온 사랑을 쏟아 붓는 것 같이 사랑을 쏟아 주고 계셨습니다.  ............. 의술이 죽을때 하느님이 일하신다.'
  • 2019.12.27일 요한 사도 축일의 선물
    참으로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매번 축일 선물을 잊지 않으시는 편이시다.올해 12월 27일 요한 사도 축일에도 우린 귀한 선물을 받았다.베나뮤즈 병원에서 일하는 자매님 한테서 연락이 왔다. 어떤 간호사가 길거리에서 상처로 뒤덮인 몸을 하고 길거리에 누워 있는 분을 근처 병원에 모셔 놓고 왔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그래서 모시고 온 그분은 등에 상처가 종이 가운과 붙어서 만지기만 해도 아파했다.그리고 우측 다리는 검정 비닐로 싸여 있었다.우선 목욕을 시키려고 옷과 비닐을 벗겼는데 다리가 썩어 문드러져서 1/3일 떨어져 나갔다.냄새가 지독한 것은 고사하고 너무 많이 버글거리는 구더기를 보고 모두 놀랐다. 아이티에 와서 환자들 몸에서 많은 구더기들을 제거했지만 이번이 최고 였다.  또 이렇게 어려운 분을 모시게 되어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그냥 호스로 물을 막 뿌려서 씻어내리고 싶지만 이놈들이 어디론가 살아 도망가서 파리가 된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가능한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심에서 물을 부어 씻어 내렸다.하루 두 차례씩 제거 하다보니 오늘은 구더기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성체 조배를 가서 앉아 눈을 감으면 상처들 속에 머리를 빽빽하게 박고서 죽은 듯 숨어 있는 녀석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_- ;;그런데 아저씨는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소리부터 한바탕 지르신다.그분의 얼굴에는 그동안 얼마나 험하게 살아 오셨는지 보였다.그래도 이런 소임은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다.그런데 공동체 생활에서 관계 안의 어려움은 영혼을 죽인다. 주님 왜 십자가에는 매달리셔서 저를 이렇게 힘들게 하시는지... 그냥 예수님의 사랑하나 믿고 따라 왔더니만 ...알고 보니.. 그렇게 당신처럼 살다가 죽으라고...  그런데 난 그럴 능력이 없다. 좀 너무 무리한 기대를 하시는 것은 아니실까.... 이 봉헌의 삶이 감사함과 더불어 어려움 그리고 이해할 수 없음 등의 감정들이 교차한다.
  • 조슬린 쁘띠 프레
    조슬린...지난주 핫 라인 선교단체에서 입소의뢰가 왔다.허름한 판자 집에서 딸과 둘이 사는데 조슬린, 그녀는 하반신 불구라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살았다.그녀의 딸은 정신과 증상으로 계속 횡설수설했다. 그런데 무슨 문제인데 조슬린은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3개월을 아파서 누워있었다.그리고 속이 아파서 힘들다고 했다. 거의 곡기를 끊은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그녀의 뱃속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숨을 헐떡거리며 숨을 쉬면서 하시는 말씀 "제가 여기 삼일째 인데,  "저 수액 때문에 기운을 좀 차렸습니다. 근데 이제 안 맞아도 될 것 같아요,.."엄청난, 죽음에 이르는 고통의 순간에 있으면서도 그 분은 그렇게 점잖게 말씀하시고 매번 물을 드리거나 기도를 해드려도 꼭 고맙다고 인사하신다.많은 분들을 하늘 나라로 보냈지만, 이분처럼 죽음을 덤덤하게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분을 보지 못했다. 그 큰 마음을 잠시 지켜보았지만 기억에 남는 분이다.그리고 조슬린과 약속했다.혼자 남은 딸을 꽃동네로 모시고 와서 안전하게 돌봐드리겠다고...그리고 어제 왔다. 36살인데도 마치 20대 초반 같이 젊어 보였다 그리고 애기처럼 순수하다.엄마의 장례 미사를 참석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어리둥절하는 것 같기도 하고..딸이 묘지도 다녀왔다.이제 딸의 어머니가 될 어르신을 찾았다. 조슬린 처럼 마음이 넓고 좋으신 우리 파고 할머니. 참을성도, 인내심도 대단하신 분이시다.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몇몇 분 중 한 분이시다.엄마를 대신해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간절하다.
  • 바로 네가 예수였구나!
    바로 네가 예수였구나!  2019.9.11

     

    창조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임마누엘!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네.

    온 몸은 강직되어 통나무 같고 모기가 물어 뜯어도, 파리떼가 얼굴을 괴롭혀도, 더위에 온 몸이 땀으로 젖어도, 음식이 흘러 입가로 목 뒤로 내려가도, 변을 보아도,  땀띠로 몸이 간지러워도 한마디 불평없는 너!

    그런 불편함에도 눈 한번 마주치면 세상 어떤 이 보다 행복한 미소로 활짝 웃어주는 너!

    네가 바로 예수였구나!

    이천년전 이땅에 오셔서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치고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죄인들의 손에 넘기고 한 마디 불평없이 돌아가신 분!

    이젠 다시 그런 가르침이나 기적이 필요가 없어 이렇게 가장 보잘 것 없는 나약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온 예수!

    네가 바로 예수였구나!

    이 세상의 편리함도, 자동화도, 현대화도 그 어떤 것도 너를 그 강직된 육신에서 더 나아지게 할 수 없는데,

    넌 그저 불편한 기색없이 싫은 내색없이 하루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고 있구나.

    그런 네 모습에서 난 2천년전 엄청난 고통을 겪고 돌아가신 예수를 본다.

     

    당신의 소명인,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가르쳐주려 했던,

    그리고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길 바랬던 예수!

    지금 이순간도 우리 곁에서 예수가 겪었던 고통을 침묵안에서 견디어 내고  있는 너!

     

    네가 바로 예수 였구나!
  • 아이티 꽃동네 방문기 - 토비야 형제님 편 2018년 12월…
    몇 년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던 아이티 꽃동네 방문이 실현되었다. 기뻤지만 한편으론 걱정과 두려움, 초조함, 부끄러움,
    등 많은 단어들이 떠올라 갈 길을 무겁게 만들었다. 모든 근심걱정을 뒤로하고 함께가는
    일행과 아이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시간 정도를 날아 아이티 상공에 다다랐을 때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민둥산과 색깔 없는 작고 밋밋한 건물들이 밀집되어있는 작은 소도시 같았다.

    아이티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작은 도시의 시외버스 터미널 정도 크기의 초라한 공항이다,
    뉴욕 JFK 공항에서 내 가방을 싣지 않아 분실신고를 하고 공항 밖으로 나와서 마중
    나오신 마지아 원장 수녀님과 도마 수사님을 만났다. 여기져기 긁힌 승합차를 타고 이이티 꽃동네로 출발했다.
    가는 길 양쪽에 펼쳐져 있는 그림들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차들과 사람들이
    뒤엉켜 도로는 무법천지 같았고, 공항에서 꽃동네까지 가는 동안 신호등이라곤 공항 초입에 있는 한 곳이 전부였다.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 멀쩡한 곳이라고는 단 한 군데도 없어보이는 주거지(집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판매를 한다는 자체가 이상할 정도의 물건들을 진열해 놓고 팔고있는 길거리 노점상들,
    너덜거리는 옷을 걸치고 이리저리 걷고 뛰어다니며 아무런 희망도 없이,살기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먹기만을 위해 끊임없이 먹을것만을 찾아 헤메고 있는 듯한, 초점도 없고 의지도 의욕도 없는 눈빛들…….
    탄성만 저절로 나올 뿐이었다.

    약 20 킬로미터도 안되는 거리를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꽃동네 정문을 들어서니 깨끗하게 정리된 작은 길 끝에 꽃동네 주 건물인 사무실이 눈에 들어 왔다, 작고 허름하지만 처음으로 건물다운 2층짜리 건물을 보았다. 소개하지 않으면 그냥 일꾼인 줄 착각할 정도의 신부님과 수사님들 그리고 작업용수도복(?)을
    입으신 맑은 눈과 밝은 얼굴의 수녀님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인사를 마치고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작은 숙소가 여러 채 있는데 각 숙소에는 침대가 두 개 선풍기 한 대 그리고 접이용 데이블이 구비되어 있었다,  최근에 업그레이드 해서 멀리서 찾아오는 봉사자들을 위해 특별히
    배려하신 것이었다. 공용으로 사용하는 몇 개의 화장실엔 물을 받아 씻을 수 있는 함지박까지 있어서 더욱 완벽했다.
    물과 전기는 필요한 시간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시몬 수녀님의 안내로 동네를
    둘러 보았는데, 버려진 장애 아이들이
    있는 아기 집, 갈 곳 없거나 장애가 있는 분들을 모시는 여자 숙소 와 남자 숙소,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중환자실, 정신적 장애가 있는 분들을 모시는 남자 숙소와 여자 숙소,
    기도방이 달린 식당 겸 성전, 신부님과 수사님들의 놀이 공간인 공작소(필요한 가구나 철재 구조물들이 이곳에서 제작되고 있음),닭장(못가봤음)등, 이 모두를 단 여섯 분(신부님, 두 분의 수사님, 세분의 수녀님)이 관리하고 계셨다. 모신 분들은 총 280여분,
    어쩔 수 없이 목공이 되었고, 기술자가 되었고, 보모가 되었고, 영양사가 되고 선생님이 되어야 했으며 의사,간호사,상담자가 되어야만 하는 신부님과 수도자님들, 일인이역이 아니라 일인다역을 하고 계셨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기도실에서
    삼종기도를 다 함께 바쳤다, 생전
    처음으로 드리는 삼종기도가 정말 좋았다. 시편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맑은 목소리로 리듬에 맞춰 기도하는 수녀님들과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고 있는 듯한 신부님 수사님들의 합송이 나에겐 너무도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숙소에 돌아와서 함께 방문하신 일행분들과 마지아 원장 수녀님이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
    수녀님 말씀 중 “ 우리는 복지사업이 아니고 구원사업입니다” 짧으면서 강력한 메세지를 머리속에 새기고 잠이 들었다.
    물론 복지사업도 큰 틀인 구원사업 안에서 당연히 행해지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다음날, 아침 5시
    30 아침 미사 봉헌에 이어서 아침기도를 마치고 천사의 집(아기집)으로 향했다, 모두가 장애를 가진 작은 아기들과 아이들, 그야말로 천사들이 우릴 맞았다. 변을 가리지 못하고 심지어 먹기까지 해서 권투글러브를 끼워놓은
    아이, 다리가 양쪽으로 벌어지는 병을 앓고 있어서 가벼운 쇠봉으로 양쪽 다리를 고정해놓은 아이(그런데도 옆으로 잘도 뛰어놀고 있었다), 팔다리에 장애가 있고 정신적으로 미숙한 아이들,
    이 아이들은 국립병원에서 방치되어 있거나 쓰레기장, 혹은 거리에 버려져 있던,
    말 그대로 버려진 아이들이었다. 머리를 예쁘게 딴 안젤라에게 밥을 먹이게 되었다.
    안젤라는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있는 아이였는데 밥을 혼자 먹기는 하지만 너무 어려워서
    몸과 주변에 많이 흘리면서 먹어야 했다, 입, 얼굴주변과 바닥,
    몸에 묻어있는 음식물들을 닦아주며 힘들 게 겨우겨우 먹이고 나니 무슨 큰일은 한 것처럼 뿌듯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아이들에게 밥을 먹여주었다, 작은 아기들을 안고 먹여줄 때는 너무 사랑스러웠다,
    아이들과 눈도 마주치고 이마에 입맞춤도 해 주었다.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누군가의 미음에 조금의 사랑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누구도 할 수 있겠구나,
    이것이 주님께서 우릴 사랑하시고 우리도 남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주신 크나큰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에게 밥을 먹인 다음
    성전 겸 식당에서 맛있는 아침 식사를 마을 가족분들과 함께 했다.
    반찬 없는 성찬(?) 이었는데 맛있게 먹었다. 아침 식사 후, 남자들 숙소에 가서 그분들을 목욕시키고 수염도 깎아 주었다, 숙소 안의 침대 시트도 갈아주고 창문(유리가 없음)에
    있는 블라인드도 닦아주었다, 장애가 있는 분들이라 숙소 안에는 역간 냄새가 나고 어떤 블라인드엔 실례해서
    칠해놓은 부분도 있었지만 아주 깨끗이 닦는 데는 전혀 문제될게 없었다. 깨끗이 목욕을 시켜드리고 기저귀와
    옷을 갈아입히니 멋쟁이가 따로 없었다, 꼭 안아드리며 하느님께 기도했다, “주님 감사합니다.”

    다음 날, 오토바이택시(그냥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불러서 요금 흥정하고 타면된다)로 수사님과 함께타고 공항에 가서 짐을 찾았다.
    짐가방에는 주로 김,라면,캔반찬류 등이다.
    그나마 봉사하러 오시는 분들이 이렇게 조금씩 가져와야 여기 계신 분들도 드시고 봉사자들도 조금씩 먹을수 있기 때문이다.
    짐을 찾아 오니 중환자실에서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들렸다. 오신지 얼마 안
    된 분이었고 위중하셔서 편안한 임종을 맞도록 해 드리기 위해 이곳으로 모셔온 분이었다. 전날 중환자실에 들렸을때
    수녀님이 아마 이분은 호흡이 길어지는 것을 보니 오래 못 사실 것 같다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다음 날,
    장지 출발 전 예식을 거행하고 관을 트럭에 모시고 장지로 향했다. 묘지에 도착해서
    입구인지 담이 무너진 곳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곳을 통해, 마련된 묘지까지 운구하였다. 어렵게 도착한 묘지는 사격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위에는 콘크리트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다. 미리
    묘지 정면을 뚫어 놔서 운구한 관을 밀어 넣고 입구에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입구를 막았다. 막는 동안
    신부님의 주송으로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를 한 꿰미 바쳤다. 그리고 신부님께서 마르지 않은 시멘트벽에 날짜와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새기었는데 이름은 “NICOLAS” 였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수녀님이 처음으로 간식을 사주셨다.
    얇은 비닐봉지에 담긴 사탕 수숫대였는데 50여년 전에 즐겨먹던 옥수숫대보단 나았다.

    오늘은 쓰레기장 가는 날이다. 쓰레기장에서 생활하는 분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옷을 나누어
    주러 가는 날이다. 나누어 줄 음식상자(적어도 상자당
    10킬로그램 이상 되어보였다) 300여개와 옷가지를 창고에서 트럭으로 옮겨 싣고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쓰레기장 중앙에 도착하니 여자아이들과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줄을 서 있었다. 가족 중에서 여자만이 받아갈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주위에는 100여명 이상의 남자들이 서성거리고 알아듣지 못하지만, 굉장히 거친 말들을 뱉어내고 있었디, 분위기가 너무 험악하여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처럼 느껴졌다.
    우여곡절 끝에 작은 집으로 상자들을 옮기고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한 줄로
    입구에 들어서면 미리 나누어준 카드를 신부님께 내고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한 상자씩 머리에 이어주고, 옷가지
    한 장을 어깨에 걸쳐주고 곧장 맞은편 문으로 나가면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나 가족들이 받아들고 가면 된다. 그런데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행패를 부린다, 가족이 없는 여자아이가 이고 가는 상자를 강제로
    빼앗거나 나누어주는 도중에 창문을 통해서 탈취하려 하기도 했다. 건물 중간에 있는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해서
    수사님이 온 힘을 다해서 끈으로 손잡이를 묶어서 배분하는 내내 잡아당기고 계실 정도다. 한바탕 소동 속에
    다 나누어 주고나니 여기저기서 큰 소리가 들린다, 먼지 때문에 얼굴에 복면을 한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우리들을
    향해 소리친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와 해코지를 할 것 같아 두려움이 들 정도다, 정말 위험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험악한 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신부님,수녀님,수사님들은 너무도 초연했다,
    수녀님들에게서 품어나오는 카리스마가 그들을 압도하기에 너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신부님, 수사님들, 어쩌면 저렇게 태연하고 의연하신가…!
    놀랍고 놀라웠다, 아! 한 점의 의심도 없는
    믿음,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고 의지하고 있으니 그 무엇인들 두렵겠는가…. 돌아오는 내내, 아니 봉사 기간 내내 생각했다, 나도
    이분들처럼 나를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드릴 수 있을까?.

    마지막 날 아침, 아이티 국립병원을 방문했다, 환자들에게 빵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기 위해서다, 환자들에게 음식이 제대로 공급이 되지않는 국립병원,
    음료수와 빵을 어깨에 메고 각 병동을 돌아다니며 누워계신 환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때론 수녀님들께서 심령기도도 해 주었다.
    모두가 익숙한 듯 우리들을 맞아주었다, 국립병원이라는 곳이 악취가 진동하고,
    음식 제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요 치료조차 제대로 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한심하기 짝이없다. 신축중인  병동의 공사가 멈춰있는 이유가 중간에 누가 건축비를
    가로챘기 때문이라는 말에 화가 치밀고 답답하기만 했다. 답을 찾을 수 없음에 안타까움만 쌓여갈 뿐이었다.

    돌아와서 떠날 준비를 하였다. 간단한 짐을 정리하고 이불 시트와 베갯잇을 빨아 널고
    침실을 정리했다.

    신부님과 수녀님 수사님들에겐
    그저 일상이 되어버린 헌신적 삶, 하느님의 부르심에 그저 ”예” 하고 오직 당신만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며 이곳으로 오신 그분들께 한없는 사랑과 감사를 드린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뵌 성자들이시다. 언제나 건상하시고 주님이 함께 머물러계시기를
    간절히 주님께 기도드린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또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를…….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내년에 다시 가기로 했다,
    그것도 내 큰 아들놈하고… 큰 아들놈이 함께 가자고 자진 납세했다.

    천사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시고 당신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을 깨우쳐 주신 주님,
    감사 하나이다. 주님께서는 찬미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또 다른 나를 발견했음을
    나는 분명히 느낀다……

    사랑과 은총을 한 아름
    받고 온 김수한 토비아
  • 시카고로 잘 돌아왔습니다 !!! Tuesday, Februa…
    + 그리스도 우리의 희망윈셀을 안고 달려오는 자매 직원분, 캐리온 가방을 가리려 박스를 들고 오시는 마지아 수녀님, 뜨거운 날씨에 아직 출발하지 않은 차 뒷편에 서 계시는 야고보 수녀님- 요한 수사님, 병원옷으로 입고 뛰어오는 남자 직원분... 멀리서부터 줌인이 되는 화면처럼 제 눈앞에 쉼없이 펼쳐지는 그림입니다. 윈쉘에 커다란 밥숫가락을 떠 넣는 스텔라,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경비직원 소니, 바리케이드 쳐진 앞에서 차가 서행할때 벌떼처럼 달려드는 데모청년들, 막힌 길 뚫으려  용감하게 내리시는 수녀님, 갑자기 앞에 있는 물 차, 골목길 담벼락과 거의 부딪칠랑 말랑 운전하시는 수녀님, 황량하고 거친 도로들, 타버린 타이어들, 감히 얼굴 들고 보진 못했던 그러나 어쩌다 쳐다본 데모대 얼굴들...쉬임없이 지난 며칠 제 꿈속에 제 일상생활속에 돌아가는 영화 필름같습니다.차 속에서 놀랍게도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윈쉘에게 미안하고 수녀님/가족분들께 미안하고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그치질 않았었지요.  지난 금욜 출발 전부터 공항도착까지 하느님께서 매 순간마다 기적처럼 저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결정을 하기까지의 수녀님의 마음이 너무 많이 느껴져서 많이 울었습니다. 주님께 모든걸 맡기고 행동하는 수녀님을 보며 살아계신 하느님을 또 한 번 볼 수 있었습니다.아이티공항에서, 수녀님께서 무사히 꽃동네로 돌아가셨다는 제노형제의 통화내용을 들은후 우리 세사람 모두 함께 굵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한한 기도로 저희를 인도하시고 위험을 감수하신 수녀님과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를 다시 한 번 전합니다.  저희가 이곳에 와 있어도 그곳에 함께 하지 못함때문에 죄스럽고 편치 않은 마음입니다.  주위의 분들께 아이티와 아이티 꽃동네를 위해 기도부탁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담주에 아이티꽃동네와 수녀님을 위한 생미사를 넣었습니다. 저와 스텔라도 아이티를 위한 묵주기도를 하루 20단 바치고 있습니다.  기도외엔 아무것도 할수 없기에....아이들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보쁠랑, 쟝뽈, 히꼬, 사라, 미쉘, 래스땡, 쥴리앙, 미스 아이티 도라, 잇단이, 삐에, 크리스토퍼, 조엘, 다비손, 대바리, 다비드, 살로몽... 께삐, 띠가, 제대용, 센시아, 쟈끌린, 아들렐렌....  예쁘고 고운 우리 할머니들....아직은 하루 시간이 꽃동네 스케쥴에 맞춰져 있어서, 아 지금 기도시간, 아침먹이는시간, 목욕시간.......  하루에도 몇번씩 기도회때 묵주기도하시던 할머니/할아버지/직원이 떠오르고...   곧 제 원래 생활로 돌아가겠지요.  수녀님/수사님들을 통해서 제가 보게되는 하늘나라의 모습. 가슴 뭉클한 많은 시간들을 일일이 다 말할순 없지만....저에게 그런 시간을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제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하는지 알려주시는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어제 들어오셨나 모르겠네요.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아이티소식을 접해보니 장난이 아니던데요. 식량이 떨어지지 않길, 가스가 떨어지지않길, 아무도 돌아가시는 분이 없길, 꽃동네에 누구도 침입하지 않길, 그곳 가족들이 합심해서 이 시기를 잘 이겨낼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도와주심을 믿으며.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시카고에서 장정란 비비안나 드림
  • 길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Dying Jesus on t…
    공동 묘지를 떠나 다시 꽃동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얽힌 차들로 복잡한 도로 오른편에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누가 다쳤나 보네요. 아마도 교통사고로 죽었을 거예요.”

    아이티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흔한 풍경에 신부님은 미처 보지 않고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차를 세울 곳도 없이 사람과 차들이 얽힌 사이에서 그 사람들의 무리를 천천히 지나가는데 한 남자가 길 위에 엎드려 있었다. 남자는 생명의 징후가 없어 보였다. 차가 사람들을 지나며 그 모습이 시야를 벗어나기 직전 나는 그가 숨을 쉬며 그의 등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숨을 쉬어요. 아직 살아 있어요!” 신부님은 즉시 차를 길가에 세웠고, 우리는 그를 향해 뛰어 갔다. 사람들을 헤치며 들어가 보니 그는 젊은 남자 였다. 이십대로 보이는 그는 많은 피를 흘리며 간간히 깊은 숨을 들이 쉬고 있었다. 많은 암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보며 익숙해진 사망직전 호흡이었다. 머리에 눈으로 보이는 외상은 없으나 입에서 많은 양의 끈적 끈적한 피가 쏟아졌고, 오른쪽 다리는 골절로 뼈 조각들이 피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될지 모르는 사이, 신부님은 경찰과 응급구조대를 알아보며 전화를 걸기 시작하셨다. 신부님이 사람들에게 그를 옮길 천을 가져 오라고 하니 누군가 하얀색 얇은 시트를 가져와 나에게 던져 주었다. 이대로 길위에 두면 그를 둘러싼 누군가가 다치거나, 그가 다시 차에 치일 것만 같았다. 우리는 시트를 그의 옆에 두고, 그를 뒤집어 시트 위에 올린 후 차도를 벗어난 골목 담벼락으로 옮겼다. 머리를 옆으로 돌려 피가 기도를 막지 않도록 하고 사이렌 소리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경찰이나 구조대는 끝내 오지 않았다. 이것 또한 아이티의 흔한 사정이라고 했다. 사람이 죽고, 그를 구경하고, 관심 밖으로 벗어난 시체는 길가에서 돼지의 먹이가 되기도 하는 곳.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의 죽음이 그렇게 전시되기도 한다.

    그가 죽어가는데 사람들은 그와 우리를 둘러싸고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어 우리와 사람들 사이의 간격은 더욱 좁아지고 있었다. 화가 난 나는 그들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밀쳐 댔다. 그 사이 그의 남자 형제인 가족이 도착했고, 신부님이 전화를 마치고 돌아와 우리가 병원으로 옮겨야겠다고 하셨다. 그를 트럭으로 옮기는데 피에 흥건히 젖은 시트가 찢어져 그의 머리가 찢어진 틈으로 힘없이 툭 떨어졌다. 우리는 시트를 다시 고쳐 잡고 그를 트럭 뒤에 태웠다. 마침 전화를 받고 즉시 출발한 원장 수녀님이 도착해 우리는 트럭과 차에 나눠 타고 병원으로 달렸다. 트럭 뒤에 앉아,수녀님이 가져오신 붕대로 일단 그의 부러진 다리를 감아 고정을 했다. 그는 곧 죽을 것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부터 그랬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를 위해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를 위해 해야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기도하던 베드로 형제님이 “대세요, 대세를 줘야죠!”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다음달 수도회에 입회하는 형제님은 그의 영혼을 먼저 생각했다. 텀블러에 넣어 온 물이 생각나 원장수녀님께 말씀 드렸고, 그 물로 그 남자는 대세를 받았다. 요셉. 그의 이름이었다. 요셉은 대세를 받고 5분 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사망한 후 였다. 사망선고 등 법적 절차를 위해 의료팀에게 그를 인계한 뒤 우리는 병원 밖으로 나섰다. 우리의 손에는 요셉의 피가 묻어 있었고, 가슴에는 젊은 남자의 갑작스런 죽음에 안타까움과 슬픔이 들어 차고 있었다.

    죽음은 갑작스럽게 나타나 누군가의 삶을 가져 가기도 한다. 길 위에서 죽어간 요셉도 그렇게 삶에서 떠났다. 아프고, 다치고, 버려지고,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즉시 달려가 그들을 예수님처럼 돌보는 아이티의 수도자들. 그들은 매일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예수님처럼 돌보기 위해 스스로 예수님을 닮아가고,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 스스로 사랑이 되어 가는 사람들이다.

     

    We were returning from the
    cemetery when we saw a crowd of people gathered at the side of the road.
    Trucks, cars, and motor cycles slowed, causing traffic to scarcely trickle by
    the chaotic scene. Fr. Thaddaeus knew immediately that there had been an accident.
    From a short distance away, we could see a broken and twisted motorcycle lying
    just beyond the crowd. It looked bad. “They’ve probably already passed away,”
    said Fr. Thaddeus quietly.

    As we passed them by the
    commotion, I saw a man lying on his stomach, showing no apparent signs of life.
    Then then I saw his back rise slightly—almost imperceptibly, but definitely
    rising and falling.     

    “He is breathing!” I
    yelled. “He is still alive!”

    Father Thaddaeus abruptly
    pulled the truck to the side of the road, and we quickly got out and ran to the
    man. He was young, probably in twenties. Thick blood puddled around his head
    and leg. The left leg was broken into pieces and a fragment of bone stuck out
    through his calf. He was unconscious, but breathing heavily and slowly.

    We had nothing with us that
    we could use to help him—no bandages, no medical equipment.  And he was
    clearly dying. I stood there next to him, frantically trying to figure out how
    I could help him. Father Thaddaeus called for someone to bring a cloth. Then he
    called the police and the EMT. Moments later, an observer returned with a thin
    white sheet and tossed it to me. We opened the sheet and, laying it next to
    him, rolled the young man onto it. Then we carried him off the road and into a
    small alleyway.

    There I turned his head to
    one side to keep his airway open, and I waited for the sound of a siren, an
    ambulance coming to save his life. But the sound never came, and neither the
    police nor the EMT responded to our calls.

    Unfortunately, this was no
    surprise and an all-too-common occurrence in Haiti. Someone dies on the road
    and people simply watch it happen, standing there doing nothing to help. When
    the dying person’s life finally ends, his body is left on display, lying on the
    road. He will soon be forgotten by all and will likely end up as food for pigs
    on the road. God mad us in His image. And I do not believe He would want this
    to be the final image of a person’s life.

    While the young man lay
    there dying, the surrounding crowd crept closer and closer. I felt terribly
    upset that they now looked upon this sorrowful scene as if they were watching
    an impressive show of fireworks. So I began to push the onlookers back,
    yelling, “Step back, you people! Give us some space.”

    Then a man from the crowd
    talked to me in English. “His brother’s here.”

    Fr. Thaddaeus told the man
    that we would transport his injured brother to the hospital ourselves. So we
    again gripped the sheet corners to carry him to the back of the truck. As we did,
    the sheet, soaking by blood, ripped and the young man’s head dropped through
    the hole. We placed his head back on the sheet and grabbed it more tightly.
    Almost at the same time we got the young man into the truck, Sr. Matthias
    arrived with some gloves and bandages. She had left immediately after receiving
    the call from Fr. Thaddaeus.

    As the truck began to move,
    I wrapped the injured man’s broken leg with bandages. I knew that it would do
    nothing. It would not stop him from dying. I knew he was going to die soon. But
    we had to do what we could for him while he was still alive.

    Brother Peter prayed for
    him with his hand on the man’s chest. Then he said urgently “Baptism! We have
    to give him an emergency baptism before he dies!” But there was no time—we could
    not stop the truck for even a moment. So Sr. Matthias poured water onto his
    forehead right there in the back of the truck and baptized the young man. He
    received a new name ‘Joseph’.

    Joseph stopped breathing
    about five minutes after receiving the sacrament. By the time we arrived at the
    hospital, his heart had stopped pumping blood to his body.

    We left Joseph and his
    brother with the medical staff in the hospital. His blood was on our hands, and
    a heavy sorrow began to fill our hearts. Sometimes death bursts into our lives
    without warning and takes everything away. Just as it took Joseph’s life away
    on that busy road in Haiti.

    The Kkottongnae missionaries
    always run to those people who are dying alone, living on the street, abandoned
    by their families or communities. The missionaries respond to their voices as
    if responding to the call of Jesus. They are becoming love so they can give
    more love to those who are in need.
  • 세인트 루이스와 수니 Saint Louis & Sony
    아이티 꽃동네에는 ‘쌍떼'라고 하는 입원 병동이 있다. 남녀가 구별되어 각각 열명씩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국립 병원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다가 모셔진 분들이다. 작년에 이곳에서 하지가 마비된 니꼴라를 만났다. 욕창으로 근육과 뼈까지 괴사 되어 드레싱을 교환할때마다 썩은 고기국물 같은 회색의 분비물이 뚝뚝 떨어졌었다. 그리고 그곳에 조나스가 있었다. 열살의 조나스 또한 국립병원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었다. 눈에서 시작된 암이 온 몸으로 퍼져 이불을 덮고 쓰레기 사이에 버려져 있는 아이를 수도자분들이 이곳으로 데리고 왔었다. 니꼴라와 조나스 모두 하느님께 되돌아 갔다. 조나스는 죽음에 가까워지며 암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강한 마약성 진통제가 아니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스럽게 피를 토하며 죽었다고 했다. 어린 아이를 왜 그렇게까지 고통스럽게 데려가셔야 했는지 예수님께 물어야 했다는 요한 수사님의 말 끝에 실린 아픔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얼굴의 반이 없어요. 눈에 암이 생겨서 그쪽을 수술로 도려 냈대요.”

    세인트 루이스 아저씨를 만나기 전 원장 수녀님과 수사님은 그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셨다.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쌍떼로 갔다. 드레싱을 교환하기 위해 그를 기다리는데, 건물을 돌아 가까이 오는 얼굴의 절반 이상을 붕대로 감은 아저씨가 보였다. 그를 앉히고 테이블에 드레싱 재료들을 셋팅하는데, 간호사가 나에게 빨간 딱지가 붙은 드레싱 볼을 주었다. ‘시다', 그는 에이즈 환자 였다. 원장 수녀님은 에이즈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세인트 루이스 스스로 자신을 에이즈 환자라고 했기 때문에 우선 그렇게 분리를 하고 있다고 하셨다. 직원을 통해 통증이 있는지 묻자, 조금 있지만 괜찮다고 했다. 붕대를 풀으려는데 잠시 손이 멎었다. 무엇을 보더라도 어떤 냄새를 맡더라도, 불쾌한 표정이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나타나지 않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부탁드렸다. 붕대를 풀고, 패킹 된 드레싱을 빼고 나니 얼굴의 절반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오른쪽 눈은 적출 되었고, 얼굴의 절반이 깊이 패여 있었다. 머리로 조금만 더 올라간다면 그곳으로 뇌가 빠질 것 같았다. 드레싱을 뺀 자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주사기로 약물을 뿌리며 깊은 곳까지 소독을 한 뒤, 다시 그곳에 드레싱을 채우고, 붕대로 얼굴을 감았다. 파리가 들어가면 알을 까니 꼼꼼이 테이프를 붙여 달라고 아저씨가 말했다. 그 곳에 있는 일주일 동안 그의 통증은 조금씩 심해서 상처 주변 피부에 리도카인 주사를 직접 주입해야 했다. 주사바늘이 피부를 뚫고 약을 주입하는 동안 그는 나의 손을 비틀듯이 세게 잡아 당겼다. 그의 통증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었다. 그와 나 사이에 있는 무력감 앞에서 나의 슬픔은 깊어져 갔다.

    수니 역시 에이즈 환자이다. 하지가 틀어져 마비된 환자로, 좌우 골반에 커다란 욕창이 있었다. 드레싱을 교환할 때마다 분비물이 많고 색깔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원장 수녀님은 그가 처음보다 많이 호전된 상태라고 하셨다. 여기저기 욕창이 치유된 자국들이 보였다. 하루는 드레싱을 교환하러 갔는데, 그가 앓는 소리를 내며 무척 고통스러워 했다. 옆에 서 계신 신부님께 물으니 그가 배변 중이라고 하셨다. 나중에 변을 확인하니 변비는 아닌 것 같았다. 변을 볼때마다 그렇게 힘들어 해야 하는 수니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수니는 늘 웃고 있다. 침상으로 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 환한 미소로 반겨 주었다. 서로 언어의 장벽은 있지만, 주고 받는 웃음 뒤로 그리 많은게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를 좌우로 돌리고, 침대를 틀어가며 방향을 잡아 드레싱을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면 그는 활짝 웃는 얼굴로
    “Merci!” 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어느날 아침에는 그를 왼쪽으로 돌려 자세를 잡고 드레싱 교환이 한창인데, 아침식사로 나온 음식을 기다리지 못하고 손으로 먹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허기를 느끼고, 맛있게 식사를 하는 그를 바라보자니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잘 먹어주어서 참 고마웠고, 웃을 수 있는 힘을 내 주어서 그가 좋았다.

    내가 아이티를 떠나기 전, 세인트 루이스는 에이즈 확정 판단을 받았다. 원장 수녀님은 검사 결과가 나왔으니 가서 등록을 하고 약을 받아 올거라고 하셨다. 그들의 고통을 바라보며 어쩌면 그들이 우리의 고통을 대신 보속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이러한 고통을 감당하기에 마땅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이러한 삶의 호사로움을 누리기에 마땅한 사람들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 지나친 고통 중에 있다면, 그가 우리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걸어가는 예수님이 아닐까. 극심한 통증으로 괴로워 하다가도, 드레싱을 마치고 붕대를 감아 주면 남은 얼굴 반쪽으로 웃으며 악수를 해 주는 세인트 루이스. 그와 수니가 꼭 나으면 좋겠다고 하느님께 말씀드렸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고.

     

     

     

    세인트 루이스와 수니 - 쌍떼의 예수님_English)

     

    In Haiti Kkottongnae, there are inpatient admission buildings
    called ‘Sante,’ where ten women and ten men receive treatments in separate
    buildings. Most of them are there because they were abandoned on a street or in
    some corner of the National Hospital.  

    I met Nicola there when I visited Kkottongnae last year. Nicola
    was a young man who was paralyzed from his waist to his toes. He was tall and
    had terrible, huge sores on his hips, sacrum, ankles and knees. When he was
    found by the Kkottongnae missionaries, the sores were already advanced into the
    muscles, tendons and bones, necrotizing the tissue. A gray-colored discharge
    dripped from his wounds when I changed the dressing.

    Also at Sante was Jonas. A ten-year-old boy found between the
    garbage dumpsters at the National Hospital, Jonas was riddled with cancer. It
    had started in his left eye and from there spread over his whole body. He was
    unable to sleep without narcotic pain medicine during the last days of his
    life. And he died coughing up blood. Br. John said to me that he had asked God
    why He had to take Jonas in such a painful way. And I could feel his deep
    sorrow over the boy Jonas’s death.

    Before I met Saint Louis, another patient at Sante, Sr. Matthias
    and Br. John told me about him.  “Only half of his face is left,” they
    said. At the time, I was waiting for him so I could change the dressing on his
    face. Then I saw a man with much of his face wrapped in white bandages coming
    around the corner of the building. I asked him to sit in the chair in front of
    me. As I was about to set the dressing supplies on a table, a nurse brought me
    a dressing bowl which had red stickers “SIDA” on. The stickers meant that Saint
    Louis was an AIDS patient. Sr. Matthias said they were still waiting for the
    final results but that he was put on AIDS precaution based on his own
    statement. Before I left Kkottongnae, Saint Louis received the final diagnosis
    of AIDS. Sr. Matthias said that she could now register him with the health
    department and receive medication for him.

    Before I unwrapped the bandages covering much of his face, I asked
    Saint Louis if he was in pain. He said in Creole, “A little, but it’s OK”.
    Before I began to unwrap his face, I paused just long enough to ask Jesus to
    help me to not inadvertently show my own discomfort at seeing his ailment. With
    the bandages removed, I saw that half of his face was gone—only a large hole,
    oozing and dripping blood, remained where the side of his face had once been. I
    sprayed saline with a syringe so it would reach deep into the wound. Then I
    packed the wound with gauze and wrapped that half of his face in bandages. He
    asked me to tape the edges of the bandages in order to better keep out flies
    that might be looking for somewhere to lay their eggs. So I did.

    Saint Louis’s pain got worse with each passing day, so Sr.
    Matthias began injecting pain medication directly into the skin around the
    wound. While she did this, Saint Louis held my hand, squeezing and twisting it
    tightly from the great pain cause by these injections. I felt helpless. There
    was nothing I could do to ease his pain or help his wound to heal faster. My
    sorrow for Saint Louis grew deeper and darker.  

    Sony was also an AIDS patient. His legs were paralyzed, and he had
    large sores on both hips and ankles. There was a lot of discharge from the
    sores and they looked very bad. But Sr. Matthias said his sores were slowly
    getting better. I could see some small white patches on his legs, which
    indicated new skin from healing. One morning when I walked into Sante, he
    looked like he was in a great deal of pain. Fr. Thaddaeus said he was
    defecating. Later, I checked his stool but it was not hard. I felt sorry for
    Sony having such painful tribulations. But he always kept a smile on his face.
    And whenever I called his name he replied with a happy grin. There was a
    language barrier between us, but it did not matter at all. I routinely turned
    him left and right to change his dressing and diapers. He always said “Merci”
    with a big smile on his face when I was finished.

    One morning, I was busy changing Sony’s dressing with him turned
    onto his left side. Before I finished the task, a nurse brought in a breakfast
    bowl and left it beside his pillow so he could eat after the dressing was
    changed. But Sony was so hungry that he started eating with his fingers while I
    was still changing dressing. I felt grateful that he had a good appetite and
    liked to eat. I’m sure he will recover from the terrible sores that plague him.
    In spite of his ailment, Sony was strong enough to keep smiling, even when
    faced with unwanted and terribly difficult situations in his life.    

    I watched the pain of these poor souls for seven days. And it
    seemed so unfair. They didn’t deserve the extreme pain and difficulties that
    gripped their lives. And I could not help but feel that we may not deserve to
    possess all the materials and luxuries that they do not have. How, when someone
    is suffering, is it possible to just walk by and pretend they do not even
    exist? To me, these poor souls seem to suffer just as Jesus did, carrying
    a cross and doing penance for us all. During my stay at Kkottongnae, I prayed
    to God to give His strength Saint Louis and to Sony. And I will continue to
    pray to God that he might bless them with His mercy so they might have a life
    without pain.
  • 국립 병원에 버려지는 아기 천사 예수님
    아이티 꽃동네에는 약 스물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모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다. 신체 장애, 지적 장애, 복합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한 식구가 되어 살아 가고 있다. 적게는 한살이 갓 넘은 아기부터 십대 아이들까지 연령이 다양하다.

    보플랑은 항문이 없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버려졌고, 꽃동네의 돌봄으로 장루 수술을 받았다. 현재는 항문을 만들기 위한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케피는 고아원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혼자 앉아 있던 여자 아이이다. 작년 방문 때, 요한 수사님은 처음 케피를 봤을때 절망과 슬픔이 눈에 가득했다고 하셨다.  세상에 대한 희망도, 삶에 대한 의지도, 사랑에 대한 갈망도 식어 버린 장애 아이가 혼자 구석에 앉아 버려지고 잊혀진채 조용히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작년에 케피를 처음 봤을때, 아이는 워커를 밀며 기우뚱하게 간신히 걸었고 워커가 없을때는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다녔다. 일년이 지난 케피는 좌우로 중심이 흔들리기는 하지만 자신의 두 발로 세상을 걷고 학교를 가고 있었다. 부쩍 자란 아이는 이제 곧 사춘기가 시작될것 같았고, 개구쟁이 탱크보이 같은 레스땡을 친누나처럼 챙기고 있었다.   

    티가는 국립병원 쓰레기장에 버려진 아이였다. 지금은 꽃동네의 큰형이지만, 처음 꽃동네에 왔을때 할머니들의 뺨을 때리던 아이였다고 했다. 병원에 버려진 동안 에이즈에 걸려 약을 먹고 있는 아픈 아이이지만, 아침이면 멋지게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 다 키운 아들처럼 마음이 흐뭇해 졌다. 신나는 북소리에 정신줄을 놓고 미친듯이 뛰어다닐 때는 대낮의 얌전한 티가는 온데 간데 없이 딴 사람이 되기도 한다.  

    레스땡(사진)은 다리가 양옆으로 활처럼 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작년에 봤을때 아이는 다리를 교정하기 위해 허벅지까지 올라온 석고 붕대를 감고 있었다. 딱딱한 석고에 갇힌 다리로 여기저기 바닥을 기어 다녔었다. 다시 만난 레스땡은 두 발로 걷고 있었다. 한 쪽 발이 안쪽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신발을 신고, 걷고, 뛰어 다녔다. 온 세상이 호기심 천지인 세살배기 개구쟁이 골목대장. 야고보 수녀님은 매일 아침 레스땡의 도시락을 챙기신다. “내 자식 기 죽으면 안된다.” 하시며 매일 만들어 주시는 맛있는 샌드위치와 쥬스가 든 도시락 가방은 레스땡의 보물이다. 요한 수사님은 매일 아침 7:15에  레스땡의 손을 잡고 길건너 학교에 데려 가신다. 어느 아침에는 레스땡 등교길에 따라갔는데, 안들어 간다며 대문을 잡고 늘어지는 아이를 선생님이 떼어 안고 들어 가셨다. 또 어느날은 동네 한바퀴 돌자며 아이들을 데리고 성모 동산에 데려갔는데, 이 녀석이 느닷없이 바지를 내리고 성모님 앞에서 쉬를 하려기에 불이나케 안고 큰 나무 밑으로 달려가야 했다. 이 녀석 오른쪽 손을 턱하니 나무에 받치고 멋지게 볼일을 보더니, 바지도 다 올리기 전에 달아나버려 그 뒤를 쫓아가야했다. 쫓아오는 내 모습이 우습던지 뒤돌아 보며 깔깔대고 웃고 난리였다. 요한 수사님의 한국어 과외열 덕분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레스땡 입니다.”하는 한글말 자기소개도 곧잘 따라한다. 수사님이 “돼지!” 하면 레스땡은 “꿀꿀!”, “병아리!”, “삐악 삐악!”을 외친다. 야고보 수녀님이 젤리 몇 봉지를 주시며 “누구 줄거니?”라고 물으시면, 자기 나름의 좋아하는 친구들 리스트가 나오고 그 중 일등은 케피다. 아기집에 들어가자마자 키 크고 무서운 막센한테 한 봉지 빼겼지만, 그리 개의치 않고 쿨 하게 내어주는 레스땡. 꽃동네 어딜가나 여기저기 레스땡을 부르는 소리가 가득 찬 꽃동네 제일의 인기남이다. 일년의 시간 동안 아이의 내면에는 사랑이 들어 찼고,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다리로 세상을 걷게 되었다.

    내가 꽃동네를 떠나기 전날, 여섯 명의 장애를 가진 천사들이 꽃동네에 들어왔다. 꽃동네 수도자 분들은 매달 빵과 음료를 가지고 국립병원을 방문하신다. 배고픈 분들에게 먹을 것을 드리고,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쓰레기장이나 샤워장에 버려진 분들을 꽃동네로 모셔 오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곳 쓰레기장과 샤워장에 장애 아동들이 버려진다. 두 달 전부터 꽃동네로 데려오기 위해 기다리던 여섯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관공서의 늦은 행정 처리와 무관심에 두달의 시간이 지났는데 마침 아이들을 데려가도 좋다는 전화가 온 것이다. 원장 수녀님이 병원 관계자를 만나는 동안, 도마 수사님은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병원 이곳 저곳을 보여 주셨다. 환경은 열악했고 환자들의 모습은 안쓰러웠다. 수사님은 샤워장이 텅 빈 것을 보며 놀라워 하셨다. 대부분은 이 곳에 시체나 죽어가는 병자들이 버려져 있는데 오늘은 의외라고 하셨다. 더러운 때를 씻는 샤워장에 아직 살아 숨쉬는 생명을 버리는 곳. 그리고 그들을 예수님처럼 모셔와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치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아 병동에 도착하니 병실 한 가운데에 여섯 개의 침대가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아이가 철장처럼 둘러친 철제 크립 안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자폐 등 복합 장애를 가진 아이는 이제 여섯 살이 되었을까. 잠시 얼굴을 내려다 보다 아이를 들어올려 안았다. 옆에 서 있던 병원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아이가 목과 팔을 무니 조심하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안고 있으면 사지를 흔들고, 내려 놓으면 잔뜩 화가 나 크립 사이로 팔이 낀 채로 온 몸을 비틀며 틀어대는 바람에 안았다 내려 놓았다를 반복해야 했다. 모든 서류 작업을 마치고 아이들을 차로 옮겼다. 네명의 아이들은 각자 안아서 옮기고, 큰 아이 둘은 휠체어로 옮겨 차에 태웠다. 병원을 나와 꽃동네로 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잠시 차를 세웠고, 원장 수녀님이 잠시 후 양 손에 먹을 것을 가득히 사오셨다. 각자 안고 있는 아이에게 빵과 요거트 등을 먹이는데, 이 녀석들 참 잘 먹는다. 입에 넣어주는 대로 잘 먹고, 주고 또 줘도 계속 받아 먹었다. 의자 끝에 간신히 균형을 잡고 앉아 있던 키가 큰 안젤라도 결국 차 바닥에 내려 앉아 수녀님이 주시는 빵을 받아 먹었다. 덜컹 거리는 차에 앉아, 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 공포와 불안과 화를 온 몸으로 맞서 저항하던 아이는 어느새 작은 새처럼 안겨 있었다.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혀 놓으니 벌써 한 식구처럼 보였다.

    수녀님들과 신부님, 수사님들은 이 아이들을 또 얼마나 예뻐해 주실까. 날이 지고 아이들이 잠든 어느 밤에 천사의 집에 들렀다. 다들 잠들었나, 어떻게 자나 조용히 문 밖에서 살짝 들여다 보고 싶었다. 한바탕의 소란을 마치고 고요히 잠든 시간에 시몬 수녀님이 아이들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며 머리를 쓰다듬고 기도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불 꺼진 방에서 아이들이 깰까 조용한 나비처럼 아이들을 살피고 계셨다. 오늘은 아이들이 어떻게 지냈을까. 요한 수사님의 사랑 가득한 목소리는 오늘도 천사의 집을 넘어 마당까지 흘러 나왔을거다. “내 딸 사라야, 사랑하는 내 딸 사라야, 내 딸 사라야!”
  • House of the Angels (국립 병원에 버려지는 …
    There are about thirty children, aged
    one to teens, living in Haiti Kkottongnae. They live in the separate building
    called ‘House of the Angels’. All of them are handicapped, physically and/or
    mentally. But some children’s disabilities are more complicated than others.

     
     Beauplan was abandoned at the National
    Hospital because he was born without an anus. The Korean missionaries brought
    him to Kkottongnae, where he underwent surgery to make a stoma in his belly so
    he could pass stool. A bag was attached to the stoma to collect the stool.
    Beauplan is about a year old, but he is very small so he looks like he is only
    a few months old. He is now waiting to receive a surgery to make an anus and to
    close the stoma. But before the surgery can be performed Beauplan must weigh
    3Kg, a body weight which he has not yet reached.

     
     When the Korean missionaries first met
    Keffy, a seven-year-old girl, she was living in the orphanage across the street
    from Kkottongnae. There, according to Br. John, she sat in the corner by
    herself, covered with dust, her face emotionless and her chin drooped down onto
    her chest. When I met Keffy last year, she had deformed legs and was basically
    unable walk. She could scarcely walk by pushing a walker, but mainly she
    crawled around without it. Then, when I met her again this year, I was
    heartened to see her walking on her own feet. After undergoing surgery from
    Korean medical volunteers last year, she is now able to walk with only a limp.
    She even takes care of the little children, especially Lestin, whom she cares
    for as if he were her real little brother.

     
     Tiga was found between the garbage
    dumpsters at the National Hospital, abandoned and a victim of AIDS. When he
    first came to Kkottongnae, he used to hit and slap the faces of his elders. But
    he is now a caring big brother to the younger children at the House of Angels.
    When I saw him dressed in his school uniform every morning, I felt so proud of
    him, like I was looking at my own son. He loves music, especially the sound of
    drums. When he hears drum sounds, he is transformed into a totally different
    person.  Lestin was born with deformed legs that curved roundly into the
    shape of an oval. He, too, was abandoned at the National Hospital. When I met
    him last year, he was not able to walk. Instead, he crawled around from place
    to place, and he was in a cast that covered both his legs from hip to toe. When
    I met Lestin again this year, he was walking and running. Like Keffy, after
    undergoing surgery from Korean medical volunteers last year, Lestin was able to
    walk. His right foot is bent slightly inward but he can walk and run perfectly.
    He is such a curious three-year-old boy and every day he goes to the school
    across the street from Kkottongnae. Sr. James makes him a lunch with a
    delicious sandwich and juice box every morning. And so Lestin’s greatest
    treasure is his lunch box.

    Br. John walks Lestin to school at 7:15
    every morning. One day, I followed them to the school. When they arrived at the
    entrance, Lestin started to cry like he didn’t want to go to school. His
    teacher had to come over and carry him in her arms. Another day I took Lestin,
    Keffi, and Julien to the Garden of Mother Mary. There, Lestin suddenly pulled
    down his pants and was about to pee on the feet of Mother Mary. I quickly swept
    him up and ran out of the garden to a big tree. He peed while leaning on the
    tree and then run away before I could even get his pants back up. I had to
    chase after him, and he just kept going, looking back and laughing at me.

     

    Br. John is enthusiastic about teaching
    the Korean language to Lestin. After his diligent efforts, Lestin became quite
    good at repeating what Br. John said in Korean. Words and phrases like “Hello.
    My name is Lestin.” And when Br. John said the name of an animal in Korean,
    Lestin made the sound of that animal. If Br. John said “Pig”, then Lestin would
    say “oink, oink.” If he said “chick,” Lestin would respond with “peep, peep”
    and so on.  Listening to them, they
    sounded as if they were singing a song or playing a game.

     
     One afternoon, Sr. James gave Lestin a
    few bags of gummy bears and asked him who he wanted to share the snack with. He
    listed his favorites at House of the Angels, and Keffy was at the top of the
    list. But as soon as Lestin walked into the house, tall Maxen snatched the bag
    from his hands. Still, it was all fine with Lestin. He shared his snacks with
    some friends until there was only one bag of gummy bears left in his hand. So
    not surprisingly, whenever I walked around with Lestin at Kkottongnae, I could
    hear the others calling out, “Lestin, Lestin, my boy!” He was the most popular
    boy in the village, a little star of sorts. It was such a gratifying
    experience, seeing the change in this young boy over just one year. My last
    visit, I saw no trace of the fear that I had read in his eyes the previous
    year. Now he is just a perfect, average three-year-old little boy who likes to
    run, talk, cry and laugh.

      
    The Kkottongnae missionaries visit the hospital every month to
    provide bread and drink to the people who are hungry and to bring back sick
    people who are abandoned in the filthy shower room or even dying in some corner
    of the National Hospital. The missionaries take them back to the Kkottongnae
    village and wash them, feed them, treat their ailments and accept them as
    family. The missionaries care for them as if they were caring for Jesus. The day
    before I left Kkottongnae, six more children were transported from the
    hospital. They were all handicapped children, and they were all abandoned by
    their families in the hospital shower room. While Sr. Matthias was meeting with
    a hospital office employee, Br. Thomas showed us around the facility. The
    hospital environment was poor and there were many patients waiting for care and
    treatment. When we walked to the shower room, we found it empty, something Br.
    Thomas said was very unusual. He told us that there were always abandoned
    people there, dying without proper care.  

     

    We continued to look around, finally
    arriving at the pediatric inpatient area of the hospital, where six beds had
    been gathered in the middle of the room. The six handicapped children were
    there for us to pick up, whether they understand it or not. As we came closer,
    one boy in particular caught my attention. He looked to be about six or
    seven-years-old. He was flailing around inside the closed metal crib, screaming
    loudly. I stood and looked at him for a minute before deciding to pick him up.
    As I picked him up, a lady who was standing next to the crib gestured to me.
    She made a biting gesture then pointed to her neck and arm. She was trying to
    tell me that the boy would bite my neck and arms. I quickly turned him so as to
    keep his face away from my neck. Then I carried him around, circling the inside
    of the building and hoping it would sooth his anger. He became calm for a while
    but shortly after returned to his restless state, fidgeting and squirming in my
    arms. I put him back down in the crib, and he started to scream and shake
    convulsively in the crib. I could see that his eyes were filled with fear and
    anger. So I picked him up and walked around the building again. It was hot and
    humid inside the building with only a few fans to provide relief from the heat.
    I held him below one of the fans, standing there with him for a time. After the
    long paperwork process was finished, we transferred the children to the van.

     
     On the way back to Kkottongnae, Sr.
    Matthias stopped at the grocery store and bought some snacks for us. We the
    children in our arms and fed them bread and yogurt. Although we were not sure
    if they would eat the snacks, it turned out that they ate very well. I looked
    into the face of the boy, Louis. He looked like a little bird resting in my
    arms. At the Kkottongnae village, we gave the children baths and put clean
    cloth on them. Looking at them then, we noted how they already seemed like
    Kkottongnae family members who has been living there for a long time.

      
     I truly believe that they will continue
    to be loved and cared for by the Kkottongnae missionaries. While I was visiting
    the House of Angels one night, I watched how Sr. Simon took care of the
    children. She prayed over the head of each sleeping child in the dark room. She
    moved silently like a butterfly from flower to flower checking on them. At
    times I find myself wondering how these angels spent their day in Kkottongnae
    today. And sometimes when I close my eyes, I can hear Br. John’s voice floating
    softly through the window, saying, “Sara, my lovely daughter Sara, my daughter
    Sara”
  • Julien
    Sr. Simon sent
    me a picture of a baby boy before my first visit to Haiti Kkottongnae in 2017. The
    three-month-old boy had a round face and curly hair. In the photo, he was
    holding Sr. Simon’s finger, gazing up at her with beautiful dark eyes. His name
    was Julien. During my visit, I never once saw him crying. He would lie in bed
    quietly and suck his thumb like he didn’t want to bother anyone. Whenever I
    made eye contact with him, he smiled a beautiful infectious smile at me. Julien
    was born with deformed legs. His legs were covered in a cast from hip to toe,
    and he was regularly taken to the hospital to change the cast. 

     I met Julien again
    a year later on my second trip to Haiti. He had grown a lot but still had the same
    dark curly hair and infectious smile. He could now sit and crawl by himself.
    His legs were no longer in a cast but folded under him, as if he was sitting
    cross-legged all the time. It was amazing to watch this little boy sit and
    crawl with his folded, crossed legs, pushing his body with both arms as he
    crawled across the floor. When I gently patted his bottom, being filled with
    such pride for him and his accomplishment, he turned his face back to me and
    smiled widely. 

     

    Often, when I had
    finished my daily tasks, I would visit House of the Angels in the afternoon to
    see how Julien was doing. I would take Lestin, Keffi, and Julien for a walk
    around the village, carrying Julien in my arms and following Lestin and Keffi most
    of time. Julien was always so curious about the chickens in the yard and could
    not take his eyes off them as they pecked seeds and grain off the ground. Yet
    he was scared of a few-weeks-old puppy.

     Julien was also
    a good eater. He would eat a bowl of corn soup and drink a full bottle of milk.
    One day, while returning to Kkottongnae after we dropped Lestin off at his school,
    I realized that Julien would grow up and soon go to school too. Br. John made a
    habit of teaching Korean words to Kkottongnae children whenever they were
    walking together, and once I heard Br. John say “Eom-ma”, which means mother or
    mom. Julien was abandoned by his own mother but was accepted by the
    missionaries of Kkottongnae and was now growing under the care of the Kkottongnae
    family. 

    The day I left
    Kkottongnae, I spent the morning walking around the village with Julien. I
    picked a purple flower from a flower bush and put it behind his ear. He pulled
    the flower from behind his ear and turned it over and over in his hands with
    his little fingers. Sr. Matthias said that Julien will be able to walk when he
    undergoes a special surgery. Just like Lestin was able to walk after a surgery.
    I pray to God to help Julien grow in His love. That he might love this world
    that God has created, and love God and grow into a beautiful person. I send my
    prayers to heaven every day, hoping and believing that they will come back down
    to this world and fall softly upon Julien with the love of God.
  • Finding the way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
    Finding the way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_English)

    In Haiti
    Kkottongnae, there are two freezers used to store dead bodies until they can be
    buried in the cemetery. An elderly lady passed away a day or two before I
    arrived at Kkottongnae, so I was able to watch how Kkottongnae missionaries
    take care of those who have been taken by death.

    According to Sr.
    Matthias, Haitians are extremely fearful of touching dead bodies. They believe
    that doing so will bring bad luck. At the beginning of her mission in Haiti,
    when a patient passed away at Sante(ICU), not one of the Haitian staff working there
    would help prepare the body for burial. They refused to help with any of the
    preparations that required them to touch the dead body—tasks like washing the
    body and changing the clothes of the deceased, which sometimes meant cleaning
    up fecal waste. Also, things like closing the eyes had to be done, and placing
    a rolled-up towel under the chin of the deceased before the body became brittle
    and the mouth lodged open. These were all tasks that the Haitian staff did not
    want to do because of their cultural beliefs. But the Korean missionaries
    diligently showed them how to prepare the body for burial, and over time, the
    Haitian staff gradually became more comfortable and more involved in the
    preparation process.  

    The Kkottongnae missionaries
    also noticed that the elderly of the village struggled with the weight of their
    sorrow when faced with the loss of a companion and with the fear that death
    that may come next for them. The missionaries wished to help these elderly
    people understand that death is a sad good-bye for us on Earth, but it is also
    a great blessing for the person who is returning to God in heaven. So the missionaries
    taught the elderly in Kkottongnae the Korean traditional prayer called Yeon-do,
    a group prayer said after death. During the Yeon-do, the group offers up a
    continuous prayer for the souls of those returning to God, so they will receive
    God’s mercy and peace.

    I was able to
    join a group of the elderly people at Kkottongnae after they finished Yeon-do
    for a lady who had passed away several days earlier. They were sharing some
    snacks and tea with the sound of a live drum beating in the background. Some of
    the elderly were dancing, and I saw the young boy Tiga among them. He was
    running about the auditorium, excited by the sound of the drum. His eyes were
    wide open and he looked as if he was about to drool from his half-open mouth.
    One young man sitting in a chair grabbed Tiga tightly by the arm and tried to
    stop him from running around. But Sr. James swiftly approached the young man and
    asked him to let go of Tiga’s arm.  

     The next
    day, we went to a cemetery located along the busy market street. Although open
    to the public at one time, the cemetery was now separated from the street by a
    concrete wall. Fr. Thaddeus and some of the men carried the casket into the
    cemetery. A group of people standing at the corner followed us in.

    We stopped in
    front of a tomb made of cement. Beside the tomb was an old broken casket,
    empty. I asked Fr. Thaddeus where the old casket was from. He said that tombs
    were shared. When the remains of the previously buried body has been reduced to
    bones, its casket is taken out of the tomb. The old casket is then discarded,
    but not before the bones are placed back in the tomb along with the new body in
    a new casket. This process is repeated over and over again.

    The workers
    deposited the casket in the tomb and closed the tomb entrance. Fr. Thaddeus
    then prayed over the tomb. As we were about to leave, Br. Peter pointed and
    said there was a damaged crucifix headstone not far away. So we walked over to
    the headstone and saw that the corpus of Jesus on the cross had both arms cut
    off and He was stained red from head to toe. Fr. Thaddeus said the cross had
    been vandalized by adherents of Voodoo on Easter Sunday and that the red stain
    was the blood of an animal. I was standing there, gazing at Jesus, feeling
    helpless. On the way out we saw a group of Voodoo adherents preparing a
    ceremony in front of a black cross. I couldn’t help but imagine them cutting
    the arms off of Jesus and dousing him in animal blood.

    As we were
    leaving the cemetery, I noticed a young woman walking in front of me. She was
    one of the group of people who had been following us since we had arrived. She
    wore a pair of old slippers on her feet, but the back half of the soles were
    torn and missing, so both of her heels were clearly visible to me. I stopped
    her quietly, pointing to my shoes and asking if she wanted them. She shook her
    head and said something I did not understand.  But I understood her hand gesture,
    asking for money. Since I did not have any money with me, I asked her again if
    she wanted my shoes. But again, she shook her head, no.

    I thought about
    the life of the Kkottongnae missionaries while we drove back to Kkottongnae
    village in the van. They go out to the streets and to the hospital to look for
    people who need help. The missionaries bring them to Kkottongnae and wash them,
    feed them, treat their wounds and diseases and accept them as a family. The
    missionaries also take care of handicapped children who have been abandoned by
    their own families. In a sense, these children start a new life with new
    parents in the village. The six missionaries of Kkottongnae walk with God every
    day. They listen to His voice, see the world through His eyes, and live—like
    Him—with a heart full of love and compassion. They create hope when there is no
    hope. They make us believe that maybe this world can still be warm and bright
    thanks to their abounding love and sacrifice.

아이티 찬양 (Pret a chanter)

  • 탄생의 기쁨은 구원에 있고
    아이티 꽃동네의 첫 생명들.아기들은 입소날짜가  없다 거리를 떠돌던 임산부들이 꽃동네에 입소하면서  처음으로 꽃동네 안에서 탄생된 아기들여자 가족들은 아기 이름을 짓는데 서로 큰 소리가 오간다. 마치 자신들이 낳은 아기인냥 예쁜 이름 축복의 이름을 지어 주고싶어 너도 나도 목소리를 높인다.아기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마음이 아기들의 눈동자처럼 깨끗해지길 우리의 마음이 아기들의 미소처럼 순수해지길 우리의 마음이 아기들의 존재 자체처럼 기쁨이길 기도한다   
  • 착한마음
    착한 마음은 어디서오는가?도와주는것을 모르던 아이가 커가면서 변해간다걷지 못하던 삐에에게 혼내기도하고 달래기도하고삐에는 울고 나는 마음이 무너지던 시간들...이제는 제법걷는다.그러던 어느날 새로입소한 까멜리엔뒤에서 살짝씩 밀어주지 않으면 걷지 않는 아이그런 까멜리엔을 밀어주기 시작했다.워커가 없으면몸에 중심도 잡지 못하고 쓰러지는아이자기혼자 걷기도 힘든아이지만 그 힘마져도 나눌줄 아는 아이로 성장하는구나!그 착하고 고귀한 마음은 어디서 나왔니? 사진찍는 나를보더니삐에가 '기도 다녀오는 길이야' 한다.너는 버려졌고가난하고잘걷지도 못하고손가락도, 정신도 건강하지 않지만그 누구보다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실천하는 아이구나!
  • 최선을 다하는 삶
    최선을 다하는 삶이란...걸을 수 없지만 앉아 있을 수 있는곳에서  함께 플을 뽑고  엉덩이가 나온줄도 모르고 열심히 집중하고..누가 있던 없던 열심히 발차기 연습을 하며 기회가 있을때마다 사고를 치며아기 파우더를 실컷 빨아먹다 들키니 최선을 다해서 큰 소리로 웁니다 사고치는 만큼 사랑도 열심히 배워가는  아이들이랍니다
  • 아이티 꽃동네 중환자동 리모델링
    지금 아이티 꽃동네는 중환자동 리모델링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한국의 꽃동네 가족들을 비롯해 전세계 꽃동네 은인들께서 후원해 주신 기금으로 그동안 공사를 진행해 왔고 건물의 기본 골격이 완성되어 지금은 세라믹 타일 작업이 마무리된 상태입니다. 앞으로 건물 내장 인테리어와 조명 전기작업등이 남아있기에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만 주님의 은총으로 잘 완공되리라 믿습니다.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건축환경 속에서 공정 진행에 시간이 많이 걸려 속을 태우기도 했지만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당신 자녀들에게 주시려 하나 봅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모시는 꽃동네 영성에 따라 입소를 받다보니 중환자동에서의 치료관리가 필요한 분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환자동 리모델링 공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기도로 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세요. 아멘.
  • 자동 혈압계 등장이요~
    아이티꽃동네에는 고혈압 환자가 무척 많다. 어르신들 중 80%정도가 혈압약을 복용하고 계신다. 그만큼 혈압관리가 중요하다. 그래서 매주 간호사들이 담당구역의 어르신들의 혈압을 체크하고 조절이 잘 안되는 분들은 의사가 혈압약을 조절한다. 한국에서는 혈압이 200이면 응급으로 입원할 정도이지만 아이티에서는 멀쩡하게 지내시는 분도 있으니 놀랄 때도 많다. 인종적인 차이인 것 같다. 그래서 간혹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분들도 심심찮게 생긴다. 재활하여 회복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몇 주 고생하시다 돌아가시는 분들도 계셔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런 현지 사정을 아시고 참으로 감사하게도 뉴저지 꽃동네 후원회원께서 아이티꽃동네에 자동 혈압계를 사주셨다. 한국에 가면 종합병원 로비에 비치되어 있는 자동 혈압계와 같은 것이다. 만만찮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기증해주신 후원회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환자진료에 큰 도움을 받게 되어 의료진에게도 큰 기쁨이 된 자동 혈압계...아이티꽃동네 어르신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기억하며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길 기도합니다. 아멘.
  • 진정한 부자
    아이티 꽃동네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주방 앞에 모여 앉아 볶은 땅콩을 손질하고 계신다. 아이티 땅콩은 정말 고소하고 맛있다. 그냥 먹어도 좋고 갈아서 땅콩버터를 만들어 먹으면 얼마나 끈기가 있는지 혀가 입천장에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을 정도다. 물론 주방 직원들이 있긴 하지만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주방 앞에 모여들어 작업에 동참하신다. 야채 손질도 하시고 닭고기도 다듬어 주신다. 그냥 얻어먹기만 하지 않고 작은 힘이라도 마을에 보태기 위해 모이는 어르신들을 보면 흐뭇한 마음이 절로 나온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이웃을 도왔던 최귀동 할아버지의 영성을 이곳 아이티 꽃동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달랄 줄만 알고 줄 줄을 모르는 사람이 거지라는 오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무리 부유해도 남에게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은 거지요, 아무리 가난해도 이웃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은 부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거지인가 부자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아멘.
  • 직원 체육대회
    직원들의 화합과 친목도모를 위한 아이티 꽃동네 직원 체육대회가 열렸다. 2년 전에 처음으로 열린 적이 있었는데 당시 직원들의 승부에 대한 지나친 열정으로 행사진행에 진땀을 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이티사람들의 잘 흥분하는 성격을 제대로 체험했던 경험때문에 작년에는 체육대회를 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조심스럽게 행사를 추진하게 되었다. 자칫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요소들을 배제하고 신중하게 프로그램을 준비하였다. 아이티에 꽃동네 수도자들이 파견된 지 3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동안 아이티 꽃동네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다. 다행히 우려했던 상황들은 발생하지 않았다. 청팀과 홍팀으로 나뉜 직원들은 푸른색과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아이티 꽃동네 원장 최 마지아 수녀의 체조 시범을 따라 나름대로 (?) 열심히 준비체조를 하며 몸을 풀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체조였지만 직원들은 큰 즐거움 속에 진지하게 참여했다.첫게임은 OX퀴즈. 한국인에게 익숙한 게임이지만 아이티인들에는 다소 낯설어 보였다. 하지만 직원들은 게임에 몰입하여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어지는 게임은 두명씩 짝을 지어 풍선이 달린 끈으로 발을 묶고 상대팀의 풍선을 터뜨리는 게임이었다. 두명이 한마음으로 움직여야하는 이 게임은 직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오전 프로그램을 마치고 가족들의 배식을 마친 뒤 직원들은 그랑살에 모여 즐겁고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다. 잠깐의 휴식 후에 이어진 오후 프로그램에 앞서 경품 추첨시간을 가졌다. 수도자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을 받아가는 직원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찼다. 물풍선 받기, 의자 앉기, 릴레이 경주, 줄다리기로 이어진 체육대회는 힘든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지친 몸과 마음을 기쁨으로 재충전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두팀 모두 열심히 경연을 벌였지만 경국 청팀의 승리로 체육대회는 마무리되었다. 승팀에는 미니 테이블이 상품으로 수여되었고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는 고급 이불이  참가상으로 돌아갔다. 부상자 하나 없이 순조롭게 진행된 행사를 마치며 우리는 은총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직원들은 2년전과 많이 다른 모습과 태도를 보여주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공동체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 준 직원들을 통해 수도자들은 큰 보람과 행복을 맛보았다. 직원들의 기쁨과 열정이 아이티 꽃동네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보살핌으로 돌아가길 기도한다. 아멘.
  • 아이티꽃동네에 식판 등장~!
    직원들을 위해 한국에서 공수해온 식판에 점심메뉴를 담아보았다. 밥과 닭고기소스, 그리고 콩소스가 오늘의 점심메뉴. 마을 어르신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그동안 직원들이 삼삼오오 흩어져 식사를 하는 것이 직원들의 화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주방업무에도 부담을 주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식판에 밥을 받아 한자리에서 먹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어르신들 배식을 마친 뒤 그랑살에 모두 모여 함께 먹으니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고 주방 직원들도 한귀퉁이에 서서 먹던 불편함에서 벗어나 식탁에 앉아 '우아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밥을 함께 모여 먹는 것은 단순히 같이 먹는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식사 전 기도를 같이 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힘든 일상의 업무에서 잠시 벗어나는 여유를 갖게 해준다. 직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하다. 직원들의 서비스가 마을 어르신들에게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주고 그들의 복지에 신경을 써주는 것은 어르신들을 돌보는 것 다음으로 중요하다. 맛있게 식사를 한 다음에는 각자 자신의 식판을 설겆이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작은 변화가 전체 분위기의 개선을 가져오듯이 성령의 바람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원동력이 된다. 아멘.
  • 상테
    230여분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다보니 아프신 분들도 있기마련이다. 그 중 거동을 못하시고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따로 모시는 구역이 있는데 "상테"라고 부른다.(불어로 '건강'이라는 뚯) 15명이 머물고 계신데 가끔 상태가 심각한 분들도 오신다. 욕창이 심해서 매일 상처관리가 필요한 분들도 있다. 식사를 못하시니 수액주사를 놓아드리고 감염이 있는 분들에게는 항생제 주사도 놓아드린다. 다행히 상태가 호전되는 분들도 계시지만 안타깝게 돌아가시는 분도 심심찮게 생긴다. 선종하기 전 신부님의 병자성사와 임종 전대사를 받고 하늘나라에 가실 준비를 마치신 분들은 비록 몸은 고통 중에 있지만 영혼은 평안한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마친다. 영원한 생명으로 가기위해 죽음은 더이상 피해야 할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기쁨 중에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멘.
  •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40여년 전 한 걸인이 있었다. 젊어서 일본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탄광에서의 혹독한 시련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발각되고 만다. 온갖 고문 끝에 몸과 정신이 망가지게 되자 일본군은 그를 한국으로 돌려 보낸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집안은 이미 풍비박산이 난 지 오래였다. 살 길이 막막했던 그는 결국 걸인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고혈압과 정신병으로 인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밥동냥 해오는 것 뿐이었다. 걸인의 무리 속에는 결핵환자와 장애인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밥을 구걸하러 다닐 힘조차도 없는 이들이었다. 그들을 위해 이 걸인은 매일 밥동냥을 해와 그들을 먹였다. 자신도 먹기 전에 말이다. 걸인에겐 큰 일을 할 힘은 없었다. 단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밖에는. 그러나 그는 그 힘을 가지고 18명의 다른 걸인들을 먹여주었다. 그의 이름은 '최귀동' 꽃동네의 시작을 알리는 고귀한 이름이 되었다. 아멘.
  • 성모성월 묵주기도
    5월은 성모님의 달. 아이티꽃동네 어르신들은 매일 저녁 성모상 앞에 모여 묵주기도를 바친다. 그날그날의 진행자가 있어 묵주기도를 인도하는데 각 단 사이에 신비를 묵상하는 시간을 길게 가지는 것이 한국과 다른 점이다. 요일별로 마을 직원들이 진행을 맡아 인도하는데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기도를 이끌어가며 복음 말씀과 함께 자신이 생각하는 신앙을 참석자들에게 전한다. 단순하지만 순수한 신심으로 모여 기도하는 마을 어르신들은 기도가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이티는 자연스럽게 가톨릭 문화와 함께 해왔고 부두교의 영향으로 기복적인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상의 삶과 신앙이 분리되어있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메시 본지에'(하느님 감사합니다! )를 입에 달고 다니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이 말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멘.
  • 변기의 변신은 무죄!
    아이티꽃동네 어르신들은 아주 작은 오두막 같은 원룸 집에서 한 분 내지는 두 분이 생활하시지만 화장실과 샤워장은 공동으로 사용하신다. 마을이 생긴 지도 17년이 지났기 때문에 수리 보수가 필요한 곳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화장실 변기도 시급한 문제였다. 푸세식 변소이지만 한국과 같은 좌변기가 아니고 양변기 처럼 걸터 앉아서 용변을 보게끔 되어있었다. 그러다보니 변기와 주변이 지저분해지고 청소도 쉽지 않은 상황이 된 채 오래동안 지내온 것이다. 그동안에는 어르신들의 생활과 건강 관리에 중점을 두어왔지만, 아이티꽃동네가 마을을 인수받아 운영해 온 지 2년이 지나면서 마을 설비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 사업들 중의 하나로 공동화장실 변기 개선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약간의 구조적인 변경이 필요했기에 안전 면에서 조심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시설장의 용기있는 결단과 세심한 공사진행 관리를 통해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다. 새로운 변기는 양변기처럼 편하게 앉아서 볼일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타일을 부착하여 청소관리도 용이한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지저분한 변기 대신 깔끔하고 깨끗한 변기를 사용하게 된 것이 큰 기쁨이다. 높이가 다른 변기들을 배치하여 신체구조의 차이에 따른 편의를 제공하는 배려도 있지 않았다. 우리의 삶 속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변화는 없지만, 기도하면서 일을 해나갈 때 주님은 당신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주신다. 아멘.

아이티 꽃동네 (Haiti_Kkottongnae)

’꽃동네’는 사랑의 결핍 때문에 가정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아무 말 없이 죽어가는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들을 따뜻이 맞아들여 먹여주고 입혀주고 치료해주며,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살다가 돌아가시면 장례해드리는 데까지 보살펴드리는 사랑과 구원의 공동체입니다.

  • 509-3442-9220
  • Rte Nationale #3, Beudet-Meyer, Croix des Bouquets, Hai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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