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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꽃동네에서 만난 사람들 10/16/2017~10/20/2017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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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지아
댓글 0건 조회 21,401회 작성일 17-11-05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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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2017, 불안한 출발.   출발 전날인 일요일에는 밤을 꼬박 세웠다. 주일 학교 수업과 미사를 마친 후, 급히 차를 몰아 장을 보러 갔다. 보윤이를 태우고, 에디슨으로 가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사고, 미리 꽃동네를 다녀오신 자매님을 만나 꽃동네에 전달할 공구를 받고 돌아왔다. 보윤이는 보채지도, 떼를 쓰지도 않고, 혹처럼 나에게 붙어 따라 다녔다. 집에 돌아 와 정신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처음엔 종류가 같은 물건끼리 분류해 넣어 봤다가, 아무래도 다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아 무조건 쑤셔 넣으며 공간을 채우고 지퍼를 닫았다. 제한된 용량을 넘지 않으려고 가방을 들고 체중계에 오르락 내리락, 이 가방에서 저가방으로 옮겨 넣기를  여러번  한 뒤에야 마무리 됐다. 도저히 가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초코파이 박스와 자갈치 한 봉지가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다음날 학교 클럽에서 베이크세일을 하는 보성이를 위해 시나몬롤을 만들며 머리로는 쳇바퀴를 도는 생각의 고리에 매달려 있었다. 뉴욕까지 기차를 타면 어떻게 저 많은걸 다 가지고 다닐 수 있을까, 택시를 부르면 너무 비쌀텐데. 밤 12시가 넘어 안나 자매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기차를 타겠다는 내 말을 듣고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는 자매님은 지금 당장 와서 데려다 주겠다고, 아니면 택시를 불러 주겠다고 하셨다. 우버에서 택시를 불러 가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서야, “그래, 이제 마음이 놓여.” 라고 말 하셨다. 자매님은 내가 갈 길을 마음으로 먼저 가며 염려하고, 안타까워 하셨다. 나는 타인에게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공허해졌다. JFK 공항행 택시를 2시로 예약하고, 창밖을 내다 보며 차를 기다리는데, 픽업이 예정된 시간에 택시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공항에 가지 못하니 다른 기사를 부르라는 것이다. 미처 화를 내지도, 따져 묻지도 못하고 전화는 끊어졌다. 급하게 다른 택시를 예약하자니 집으로 오기까지만도 한시간이나 걸렸다. 마음이 급해 남편과 우왕좌왕하다 결국은 아이들을 데리고 공항으로 운전해 가기로 했다. 자는 아이들을 달래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며 하나씩 차에 실어 가랑비가 내리는 길을 나섰다. 길 위에서 나는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를 내려주고 돌아오면 아침 여섯시일텐데, 학교와 회사는 어쩌나. 이렇게까지 해서 가고자 하는 내가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엄마이며 아내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웃으며‘괜찮다'고 말해주었고, 나는 운전하는 남편의 옆 얼굴을 잠시 바라봤다.   공항에 도착해 서둘러 짐을 내려, 울며 떼 쓰는 아이들에게 서로를 위해 기도 하자는 다짐을 받고 차를 보냈다. 차갑지 않은 새벽 공기에도 이를  딱딱 부딪히도록 떨리는 몸을 가라 앉힌 것은 잘 도착했다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서였다. 성모님께 남편과 아이들의 길을 비추시어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 하시고, 매 순간 함께 해 주시도록 묵주기도를 드렸다. 공항 게이트에 앉아 창 밖을 보며 가족들을 생각했다. 12년의 결혼 생활 동안 세 아이를 낳아 기르고, 병원 일을 하며 분주히 사는 동안 나는 혼자서 어딘가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왜 지금, 그곳에 가려고 하는가. 일주일에 나흘을 뉴욕으로 출퇴근하고, 나머지 사흘은 집안일과 처리할 일들 안에서 종종 걸음쳐도 다 마치지 못해 쌓인 일들을 보며 하루가 짧은것을 속상해 한다. 아직 어린 아이들도, 남편도, 병원일도, 집안일도 모두 접어두고 나는 그곳에 가려고 한다. 머릿속을 헤집고 이유를 찾아봐도 논리적인 설명도 정당화할 구실도  찾아낼 수 없었다. 눈을 감고, 무겁고 복잡한 마음을 조용히 바라봤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설명할 수 없는 그 안에 느껴지는 것은 이끌림이였다.     ‘하느님, 당신이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고, 하게 주시는일들을 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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